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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챌린저 폭발’ 책임지고 물러난 美 나사 전직 고위간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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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우주인 7명 전원 사망 ‘참사’

고체 연료 추진체의 부품에 결함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공중에서 폭발하는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당시 로켓의 고체 연료 추진체 개발 책임자로서 폭발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윌리엄 레이 루카스 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산하 마셜 우주비행 센터 소장이 10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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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챌린저가 발사 후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하는 모습. 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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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루카스는 지난 10일 앨라배마주(州) 헌츠빌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1922년 3월1일 태어난 루카스는 103회 생일이 채 20일도 안 남은 상태였다. 헌츠빌의 장례식장 측은 이날 고인의 103번째 생일에 해당하는 오는 3월1일 장례식이 열린다고 밝혔다.

루카스는 고향인 테네시주에 있는 멤피스 주립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1943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미 해군에 입대했다. 전후 학업에 복귀한 루카스는 명문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금속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 육군 산하 연구소에 들어가 미사일 개발을 연구했다.

1958년 미 행정부는 소련(현 러시아)에 뒤떨어진 우주 분야 과학기술 장려를 위해 나사를 설립했다. 루카스가 몸담고 있던 미사일 개발 연구팀도 1960년 나사로 소속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앨라배마주에 있는 마셜 우주비행 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루카스는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아 14년 만인 1974년 마셜 우주비행 센터 소장으로 임명됐다.

루카스가 책임자로 있는 동안 마샬 우주비행 센터는 유인 우주왕복선 발사체 제작을 담당했다. 나사는 1986년 1월22일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를 발사하기로 결정하고 막바지 점검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챌린저 발사는 1월28일로 늦춰졌다. 당일에도 원래 오전 9시37분 발사하려던 것이 미세한 결함 발견으로 2시간 지연돼 오전 11시38분에야 발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우주를 향해 치솟은 챌린저는 겨우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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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호 폭발 당시 미국 나사 마셜 우주비행 센터 소장으로 로켓 제작을 책임졌던 윌리엄 레이 루카스(1922∼2025). 그는 로켓 부품 결함이 사고 원인으로 밝혀지기 직전 사퇴했다.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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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주선에는 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중 여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당시 37세)는 우주 공간에서 지구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원격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 때문에 매콜리프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의 제자들은 물론 전국의 수많은 초중고 학생들이 챌린저 발사를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매콜리프를 비롯한 우주인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모든 미국인이 충격에 빠졌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고 당일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는 오늘 아침 그들이 여행 준비를 마치며 작별 인사를 하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란 말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사고 후 미 행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가 시작됐다. 로켓의 고체 연료 추진체 개발 책임자였던 루카스에게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고 후 1개월이 지나 대통령 직속 조사위원회는 부스터 로켓의 설계 결함 가능성을 지적했다. 루카스는 기자들을 향해 “1개월은 폭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발사는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로켓에는 문제가 없음을 강변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발사 당일의 낮은 기온으로 인해 고체 연료 추진체의 부품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연료가 새며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루카스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식 조사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인 1986년 7월 사임했다. 이후 루카스가 마샬 우주비행 센터 소장으로 있는 동안 부하들의 이견 제기를 막고 사고 원인을 은폐하려는 데 급급했다는 내부 증언이 잇따랐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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