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피해, 마러라고 아닌 곳에서 트럼프 측근들과 계속 회합
임기 중 5000억 달러 AI 인프라 투자 계획에, 트럼프는 반색
머스크 “자금력 없는 가짜 프로젝트” 비난하자
올트먼 “머스크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 것. 안타깝다” 대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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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래리 엘리슨, 손정의, 샘 올트먼(트럼프 오른쪽 차례대로)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최대 5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스타게이트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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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당시 백악관 내에 있었다. 그러나 이 기자회견 직전에야 귀띔을 받아, 황급히 TV를 켰다. 머스크는 사실 올트먼과 2015년에 오픈AI를 공동 설립했다. 그러나 지배권 싸움을 벌이면서 둘은 앙숙이 됐고, 머스크는 2018년 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챗GPT가 출시되자, 머스크는 같은 AI 기업인 xAI를 출범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수 개월 트럼프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던 머스크로선 완전히 허(虛)를 찔리는 순간이었다. 머스크는 자신은 전혀 모르게, 올트먼이 마러라고(트럼프 소유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비밀리에 수 차례 모임을 갖고 백악관 측과 통화해 트럼프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을 가장 쓰라리게 여겼다.
머스크는 즉각 이들 ‘스타게이트’ 후원사들이 그만한 돈이 없다고 반박했고, 또 올트먼의 오픈AI를 974억 달러(약 140조 원)에 사겠다고 제안했다. 오픈AI 이사회는 “오픈AI는 매물이 아니고 머스크 제안은 경쟁자를 방해하려는 시도”라며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 오픈AI를 함께 세웠던 머스크와 올트먼이 왜 멀어졌는지, 올트먼이 어떻게 트럼프의 ‘첫번째 친구(first buddy)’ 소리를 듣는 머스크의 장막을 뚫고 ‘트럼프 월드’에 입성할 수 있었는지를 소개했다.
이 신문은 “두 사람은 오픈AI의 소유권을 놓고 미 기업의 최근 역사에서 가장 개인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이 결과는 세계를 바꾸는 미래 기술의 모든 것뿐 아니라, 누가 트럼프 대통령과 국가 기술 정책의 의제를 설정하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버지에게 심한 학대 받은 머스크 vs. 부모의 격려 속에 큰 올트먼
올트먼(39)과 머스크(53)는 여러 면에서 매우 달랐다. 머스크는 아버지로부터 “거의 모든 순간을 비참하게 만들 정도로 끔찍한” 학대를 받았다. 반대로 올트먼은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부모는 그에게 뭐든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머스크는 상대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지만, 올트먼은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타입이었다. 머스크는 로켓과 배터리의 세부 디자인에 푹 빠진 엔지니어지만, 올트먼은 철학ㆍ과학ㆍ문학을 두루 섭렵하며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글로 발표하는 기술 지향적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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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인공지능 행동 서미트에 참석한 샘 올트먼(왼쪽)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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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리고 올트먼의 이 욕망을 키워준 사람이 머스크였다. 밀레니엄 세대인 올트먼에게 X세대의 머스크는 영웅이자, 멘토였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ㆍ조언하는 ‘Y 컴비네이터’를 세운 올트먼은 인맥을 통해 2015년부터 머스크와 친분을 쌓았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 공장도 견학했다.
올트먼의 장점은 실리콘 밸리에 깔아놓은 광범위한 인맥과, 모금 능력이었다.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회의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장대한 비전을 설득력 있고 진지하게 펼치면, 투자자들은 그의 프로젝트를 지원하지 않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2015년 초부터 올트먼과 머스크는 매주 수요일 저녁을 같이하며 지구 종말의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종말을 초래할 한 원인으로, 인간보다 똑똑하고 통제하기도 불가능한 AI의 등장을 꼽았다. 둘은 당시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구글이 AI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좌지우지 못하게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해 5월 올트먼이 제안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그해 말 두 사람은 머스크가 상당 부분의 자본을 대는 비영리 연구조직인 오픈AI를 세웠고, 두 사람은 공동 의장이 됐다.
그러나 2017년쯤 되자 AI 개발에서 비영리 법인으로서 모금하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었고, 영리 법인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머스크는 과반수 지분과 CEO 자리를 요구했다. 올트먼은 거절했고, 오픈AI의 또 다른 투자가와 수석엔지니어 과학자가 올트먼을 지지했다. 머스크는 2018년 초 오픈AI를 떠났다.
이후, 오픈AI는 2022년 11월 30일 챗GPT를 선보였다. 이는 아이폰ㆍ페이스북ㆍ틱톡과 같은, 가장 혁신적인 소비자 제품의 반열에 올랐다.
머스크는 오픈AI가 주류(主流)가 됐고, 자신은 그 일부가 아니란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오픈AI가 인간에 대한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빨리 간다”고 비난했다. 수 개월 뒤, 머스크도 자신의 AI 스타트업인 xAI를 시작했지만 기술과 영향력은 오픈AI에 훨씬 못 미쳤다. 챗GPT의 경쟁 제품은커녕, ‘성가신 존재’도 되지 못했다.
이후 머스크는 2024년 2월부터 수차례 소송을 제기해 “오픈AI가 애초의 비영리 목적을 저버렸다”며 올트먼을 공격했다. 머스크 측 변호사는 “설립 취지를 벗어난 올트먼의 배신과 사기는 셰익스피어 작품급(級)”이라고 했다.
동시에 머스크는 트럼프와 대선 캠페인을 같이 하고 2억5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지원하면서, 트럼프의 최측근 기업인이 됐다.
◇올트먼의 머스크 우회, 트럼프 접근
올트먼은 머스크의 법적 공격을 피하면서, 작년 말부터 트럼프와 연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올트먼은 민주당원이었고 한때 트럼프를 “미국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위협”으로 비판했다. 두 사람 관계를 잘 아는 트럼프 측근들은 올트먼과 트럼프 사이를 연결하기를 꺼렸다.
올트먼은 머스크를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 작년 12월, 올트먼은 인공지능ㆍ로봇 공학 분야의 미 방산(防産) 스타트업인 안두릴(Anduril)과 기술 파트너십을 승인했다. 안두릴 설립자인 팔머 럭키는 IT 업계에서 두드러진 트럼프 지지자였다.
올트먼은 또 트럼프 가족과도 커넥션을 만들려고 했다. 즉,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작년 11월 공화당과 연계된 벤처회사 ‘1789 캐피탈’에 합류하자, 이 캐피탈에 오픈AI에 투자하라고 종용했다. 이것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올트먼은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트럼프 리조트인 마러라고가 위치한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다른 곳에서 트럼프 측근들과 만났다. 마러라고를 방문했다가, 머스크를 마주치면 ‘접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이렇게 만난 사람 중 하나가 트럼프의 오랜 친구이자 현재 상무장관 지명자인 하워드 루트닉이었다. 당시 트럼프 정권인수위의 공동 위원장이었다.
올트먼은 오픈AI가 미국 데이터 센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이니셔티브로 포장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사실 올트먼은 이 프로젝트를 ‘스타게이트’란 이름으로 이미 2023년에 오픈AI 이사회에서 언급했었다.
올트먼은 ‘스타게이트’의 투자 파트너를 찾았다. 첫 번째가 일본의 소프트뱅크였다. 그는 손정의를 Y 컴비네이터 시절부터 알았다. 두 번째는 머스크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래리 엘리슨이었다.
엘리슨의 회사인 오라클은 궁지에 몰린 머스크의 AI 기업인 xAI가 텍사스 데이터 센터 프로젝트에서 철수할 때에 도왔고, 올트먼의 오픈AI가 이를 인수하도록 주선했다. 이 텍사스 데이터 프로젝트는 올트먼의 ‘스타게이트’의 기초가 됐다.
손과 엘리슨은 두둑한 호주머니와 기술력 외에도, 올트먼에게 가장 아쉬웠던 능력을 제공했다. 바로 트럼프와의 오랜 관계였다.
작년 12월 손은 마러라고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골프를 했고, 이후에 트럼프와 루트닉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소프트뱅크가 미국 인프라 프로젝트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곧 있을 ‘스타게이트’ 발표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손이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머스크는 오픈AI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손은 또한 엘리슨과도 만났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이 있기 4일 전, 엘리슨이 올트먼과 트럼프 당선인 간의 통화를 주선했다. 올트먼은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설명했고, 트럼프는 호텔ㆍ카지노ㆍ골프장 건설 경험을 토대로 인프라 건설에 대해 많이 물었다.
올트먼도 트럼프의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머스크와 함께 앉은 다른 미국의 IT 거물들과는 거리를 뒀다. 머스크와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마주치기를 꺼렸다.
다음날, 올트먼과 파트너들은 백악관에 도착해 스타게이트에 대해 트럼프에게 더 자세히 설명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임기 중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말에, 이를 발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5000억 달러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하지만, 발표하기엔 아직 돈이 많이 모자라 위험이 따랐다. 주요 투자자들이 약속을 구체적으로 이행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올트먼은 머스크의 허를 완벽하게 찌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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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1일 트럼프 대통령이 스타게이트 계획과 관련해 모두 발언을 한 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말을 나누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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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흥분했다. 아직 자금이 실제로 확보되지 않았고, 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가짜”라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발표한 것을 “가짜”라고 비판하다니!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는 머스크의 공격에 놀랐다.
◇머스크의 반격 “올트먼과 전쟁하자”
머스크는 이미 1월 초부터 비영리 기관인 오픈AI를 인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중순부터는 공동 투자자들과 접촉했다. 머스크는 “오픈AI가 영리 기업으로 전환하려고 하고, 올트먼이 이 과정에서 오픈AI의 자산을 과소평가하려고 한다”며 자신의 인수 제안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그가 공동 투자자들에게 보낸 주(主)메시지는 “올트먼과 전쟁하자”였다.
올트먼은 지난 주 머스크가 974억 달러에 오픈AI를 사겠다고 제안하자, 이렇게 트윗했다. “고맙지만 사양하오. 그러나 당신이 원한다면 트위터를 97억 4000만 달러에 사 드리지.” 머스크는 2022년 440억 달러를 들여 트위터를 인수했다. 그 트위터(현재 X)의 기업 가치를 훨씬 낮게 평가하며, 머스크 인수 제안 액수의 10분의 1을 부른 것이다.
머스크는 자신이 공동 설립한 회사가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오픈AI가 처음의 오픈 소스, 안전을 중시하는 선한 의도의 기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이뤄내겠다”고 했다.
올트먼은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꾸했다.
“아마 그의 전(全)생애가 ‘불안정’에서 시작했을 거에요. 그를 안타깝게 여깁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상대에게 친절한 척하면서도 치명적으로 말하는 올트먼 특유의 화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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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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