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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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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81%인데 고꾸라지는 주가…포퓰리즘과 인도네시아 경제[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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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이면서 ‘스트롱맨’ 스타일인 지도자가 대세이죠. 이 중에서도 떠오르는 샛별이라 할 만한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지난해 10월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입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요. 한쪽으론 인기영합적인 정책에 재정을 퍼부으면서, 다른 한편에선 각 부처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가혹한 긴축 정책을 병행합니다.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단 거죠. 대중은 이에 열광하며 경이로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전 세계 투자자들은 영 못 믿겠다는 반응입니다.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한 인도네시아의 포퓰리즘 실험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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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그가 당선된 지난해 4월, 투자자들은 그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할 거라고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는 취임 초기부터 전혀 다른 색깔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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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급식과 무료 검진

80.9%. 지난달 집권 100일 차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프라보워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지지율입니다. 엄청나죠. 전임자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도 높은 인기로 유명했는데(지지율 65~75%), 이를 한참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은 반대로 고꾸라지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 인도네시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은 -6.59%. 한국(코스피 +7.65%)이나 홍콩(항셍 +11.17%)보다 낮은 건 물론이고, 요즘 증시 부진에 시달리는 인도(센섹스 -3%)나 말레이시아(-3%)보다도 저조한 성적입니다. 프라보워 대통령 취임 뒤 줄곧 증시는 내리막이죠. 해외 투자자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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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도네시아 종합주가지수 추이. 올해 들어 6.59% 지수가 하락했다. 야후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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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민은 프라보워 대통령에 열광하는데, 투자자들은 고개를 흔들며 빠져나갈까요. 국내에서 인기 끄는 분배 정책이 자칫 경제성장엔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 있다고 여겨서죠.

그럼, 프라보워 대통령은 취임 뒤 뭘 했을까요. 눈에 띄는 몇 가지 정책을 뽑자면 이런 겁니다.

학생 무상급식=프라보워 대통령 공약 중 가장 핵심이면서도 논란이 많았던 정책이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학생 무상급식 계획. 1월 6일 드디어 공식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첫날 학교에서 점심을 제공받은 학생은 57만명이었고요. 이를 점차 확대해 2029년엔 8290만명 학생에 매일 점심 급식을 제공한다는 게 계획이죠. 1인당 식사에 드는 비용은 1만 루피아(887원). 전액 정부 예산으로 지원됩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학생 반응은 다양한데요(맛있어요, 두부는 싫어요, 같이 먹어서 좋아요 등). 적어도 배를 곯는 학생은 없게 된다는 건 긍정적이죠. 또 급식 식재료나 식사를 납품하는 산업을 키우는 효과도 기대됩니다. 다만, 전면 시행 시 연간 약 40조원의 예산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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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시행 첫날인 1월 6일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인도네시아 학생들. 신화통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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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무료 건강검진=인도네시아의 2억8000만명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건강검진이 도입됩니다. 2월 10일 처음 시행됐는데요. 모든 국민에 건강검진 바우처(약 17만원의 가치)를 지급하고, 생일 한 달 안에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거죠. 검진 바우처가 일종의 정부가 주는 생일선물인 셈입니다. 인도네시아는 결핵 발병률이 특히 높은 나라(10%)이죠. 이런 전염병 예방에 무료 검진이 효과적일 거란 게 의학계 의견인데요. 다만 공공보건소가 그 많은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최저임금 6.5% 인상=지난해 말 프라보워 대통령은 2025년 최저임금 6.5% 인상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규정에서 공식으로 정한 것(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등 반영)의 거의 두배 수준이죠. 6.5%라는 수치가 발표되자 노동계는 환영했지만, 상공회의소 측은 “6.5% 수치가 어느 공식에서 나왔느냐”며 당황했는데요. 프라보워 대통령은 “우리는 근로자 복지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부가세 인상은 없던 일로

왜 프라보워 대통령이 인기를 끄는지 좀 감이 오시나요? 그는 국민이 좋아하는 정책을 하는 것 못지않게 싫어할 만한 정책을 하지 않는 데도 적극적입니다. 최근엔 이런 행보를 보였죠.

부가세 인상 취소=1월 1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이 계획됐던 부가가치세 인상을 취소하고 현재의 11%로 유지하는 특별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2025년 1월 1일 부가가치세를 11%에서 12%로 올린다는 계획은 한참 전인 2021년 제정한 세법에서 이미 정해놨던 내용인데요. 프라보워 대통령이 시행 막판에 이걸 뒤집은 겁니다. 그 결과 부가세 인상은 일부 사치품에만 적용되죠. 개인용 제트기, 요트, 고가 주택이 대상입니다. 당연히 국민은 이를 대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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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딤섬을 만들고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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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 보조금 개혁 철회=한동안 인도네시아는 주로 가정에서 조리용으로 쓰는 3㎏짜리 둥근 초록색 LPG 가스통(‘멜론 가스’라고 불림)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정부 에너지부가 2월 1일부터 소규모 소매점의 LPG 판매를 금지했기 때문인데요. 막대한 LPG 보조금이 엉뚱한 데로 새 나가는 걸(소매점의 부당한 가격 인상) 막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공식 대리점까지 가서 긴 줄을 서야만 하자, 소비자 불만이 폭발했고요. 급기야 한 노인이 1시간 동안 줄을 서다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죠. SNS에서 반대운동이 불붙자(해시태그는 #lpg3kg) 결국 프라보워 대통령이 나섰고요. LPG 소매점 판매 금지 정책은 바로 철회됩니다.

사실 부가세 인상이나 에너지 보조금 개혁 정책은 새로 도입되는 복지정책(무상 급식, 무료 건강검진 등)에 드는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국민이 싫어한다고 이를 다 철회해 버렸으니. 그 많은 돈을 이제 어디서 마련해야 할까요.

그래서 프라보워 대통령이 꺼낸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1월 22일 발표한 ‘예산 지출 효율화 대통령령’이죠. 한마디로 말해, 올해 정부 예산 중 약 8.4%에 해당하는 27조원가량을 삭감해 버렸습니다. 예산이 지난해 다 짜여서 집행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싹둑, 잘려 나가버린 거죠.

예산 가위질로 대혼란

예산이 모자란다며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집행 중인 예산을 삭감하는 건 우리에겐 낯선 일인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법으로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지 못하게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요. 상당히 엄격한 규제인데요. 이 3% 상한선을 넘기면 법 위반이라 큰일 나는 일로 다들 여기기 때문에, 대통령이라고 해도 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 도입하면 재정적자가 지난해 GDP의 2.29%에서 올해는 3.1%로 확 불어날 거란 분석이 이미 나왔거든요. 3% 상한선은 절대 넘길 수 없고, 그렇다고 세금을 올려서 재정적자를 메울 수도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입니다. 정부 지출 중 다른 부분을 팍팍 쳐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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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5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내각 수련회’에서 군복을 입은 장관들과 함께 의장대를 시찰하는 프라보워 대통령(맨 앞). 이 수련회는 특이하게도 모든 장관들이 군복을 입은 채 진행돼 화제가 됐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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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산이 대폭 깎인 정부 부처와 국가기관은 지금 난리입니다. 중앙부처는 사무실 전등을 끄고,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하고, 문구류 구매를 90% 줄이고, 주 2일 재택 근무를 실시했고요. 출장 경비가 반토막 나서 이제 장관도 이코노미석을 타야 할 판입니다. 한동안 공무원 보너스가 폐지될 거란 흉흉한 소문이 돌았죠(이후 대통령실은 보도를 부인). 국립도서관은 일요일 휴관을 발표했다가, 반대 여론에 못 이겨 이를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각 부처는 어느 예산항목을 얼마나 줄일지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있는데요. 아마도 의약품 조달(보건부), 대학 지원(교육부), 연구개발(과학기술부) 같은 사업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겁니다. 특히 공공사업부는 예산이 70%나 깎였기 때문에, 도로·교량 같은 인프라 건설사업은 대거 중단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놀라운 건 정작 막대한 예산이 배정된 국방부와 경찰청 같은 기관은 한 푼도 깎이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프라보워 대통령은 4성 장군이자 국방부 장관 출신으로, 방위력 강화를 매우 강조하는 인물입니다.

인도네시아 경제정책의 대전환

이런 급격한 예산 재분배에 대한 반발이 당연히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프라보워 대통령은 반대 세력을 이렇게 비판하며 밀어붙이고 있죠. “관료조직엔 마치 작은 왕이 된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돈을 절약하고 싶습니다. 그 돈은 국민을 위한 겁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인도네시아 경제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전임 위도도 대통령은 인프라 투자 중심의 정책으로 인도네시아 경제의 부흥을 가져왔죠. 특히 외국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데 열을 올렸는데요. 이런 투자 위주의 성장 정책은 단기간에 고용과 GDP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입니다. 기업 친화적이라 주식시장에서도 환영하고요.

대신 그 과정에서 경제 불균형이 커지기 마련이라는 게 문제인데요. 프라보워식 정책엔 인프라 투자보다는 이제 내수 소비 진작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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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저녁 퇴근시간 모습. 신화통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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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순 없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비 촉진에 효과 있는 건 맞죠. 또 애들 밥 잘 먹이고 건강검진 잘해서 인적자원의 질을 향상시키는 건 국가경제에 중요하고요.

다만 이런 효과가 눈으로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수 있습니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이러다 괜히 재정적자만 왕창 늘어나고 별 효과도 없는 건 아닌가 불안할 수밖에요. 루피아 통화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인도네시아 주가지수가 하락하는 이유입니다. PT뱅크센트럴아시아의 바라 쿠쿠 마미아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성장 전망에 있어 걱정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자원 재분배가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 전에 단기적인 성장 골짜기에 빠질 수 있죠.”

하지만 80% 넘는 높은 지지율은 당분간 프라보워 대통령에 계속 힘을 실어줄 겁니다. 이 정도 지지율이면 기득권층(투자자·기업·관료 등)의 불만 따위는 무시할 수 있죠. 이런 허니문 기간이 얼마나 이어질까요. 인도네시아대학교의 정치학 강사 아디티아 페르나다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높은 인기를 두고 “그가 사회적 지원을 분배하는 산타클로스로 여겨진다”고 설명하는데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건 단기적으로 매우 유용하지만 5년 동안 그렇게 할 순 없을 겁니다.” By.딥다이브

‘효율성’을 내세워 정부 예산 삭감에 열 올리는 지도자들이 요즘 눈에 띕니다. 프라보워(인도네시아), 밀레이(아르헨티나), 그리고 트럼프(미국) 대통령이죠. 각각 이를 통해 이루려는 목표는 다르지만, 공공부문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은 상당한 호응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취임한 지 4개월. 프라보워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무려 80.9%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생 무상급식, 전 국민 무료 건강검진 등. 공약했던 복지정책을 빠르게 시행 중이죠. 부가세 인상 철회라는 선물까지 안겼습니다.

-문제는 돈이죠. 무작정 국가 빚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프라보워 대통령은 기존에 배정된 예산의 대폭 삭감을 명령했습니다. 연구개발비, 대학지원금, 인프라 건설비를 확 깎아서 아이들 밥 먹일 재원을 마련할 겁니다.

-인도네시아 경제성장 정책의 대전환입니다. 그동안은 인프라 투자와 외국기업 유치가 인도네시아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는데요. 이제 내수 소비로 방향을 튼다는 신호이죠. 이런 변화가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해외 투자자들은 불안해서 발을 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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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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