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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데스크 칼럼] 량원펑과 샘 올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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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요즘 글로벌 테크 업계 뉴스메이커는 단연 ‘량원펑’과 ‘샘 올트먼’이다. 두 사람은 중국과 미국을 각각 대표하는 ‘인공지능(AI) 천재 사업가’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이끌고 있다. 1985년생 동갑내기이면서 라이벌 기업가인 량원펑과 샘 올트먼의 과거와 현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2022년 11월 샘 올트먼이 이끄는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으면서 생성형 AI 전쟁의 포문을 열자 지구 반대편에 사는 중국인들은 좌절했다. AI라는 새 시대를 먼저 연 것이 미국 실리콘밸리이며, 그 중심에는 미 스탠퍼드대 자퇴생 샘 올트먼과 구글 출신 등의 개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든든한 후원자의 지원 아래 하루가 멀다 하고 깜짝 놀랄 AI 서비스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25년 1월부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무렵 량원펑이 이끄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오픈AI ‘o1’과 비슷한 성능의 AI 모델 ‘R1′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딥시크는 오픈AI(1억달러)의 10분의 1도 안되는 600만달러를 들여 R1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미국 기업들을 위한) 모닝콜’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중국을 반도체 제재로 꽁꽁 묶어둔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첨단 AI 가속기를 구할 수가 없는데 이 같은 일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제재의 허점을 의심했다. 하지만 딥시크는 값비싼 고성능 하드웨어에 의존하기보다는 저비용의 소프트웨어 중심 접근 방법으로 이를 극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량원펑이 숙련된 경력직 개발자들을 채용하기보다 이제 갓 졸업한 중국 명문대 출신들을 뽑아 R1과 같은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량원펑 역시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중국 저장성대 출신이다. 량원펑은 중국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단기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준비된 경험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된다”면서도 “하지만 당신이 장기를 보고 있다면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기초 지식과 창의성, 열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딥시크의 사례는 우리에게 두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는 AI 후발주자가 자본이 부족해도 선발주자를 빠른 속도로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 빅테크 기업 수준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아니라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딥시크의 등장을 쇼크로 받아들이며 설 연휴 직후부터 정부·정치권이 앞다퉈 간담회를 열고 “우리는 지금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제 딥시크를 이길 수 있나”라며 난리다.

과거 우리에게도 량원펑이나 샘 올트먼 못지 않은 기라성 같은 기업가들이 등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이해진, 김범수, 김택진, 김정주 등은 인터넷·게임 분야에서 남다른 아이디어와 열정, 기술력으로 자신의 기업을 고속 성장시켰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선 기업인에 대한 막연한 견제와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기 시작했다. 정부·정치권은 자라나는 새싹 기업들을 돕고 사업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제도를 만들어 방해만 했다.

여기에 결과물에만 관심을 가질 뿐 R1이나 챗GPT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AI 시대에도 기술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것은 사람이며, 그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고민할 것은 어떻게 하면 양질의 인재를 길러내고 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기술의 놀이터를 구축하느냐의 문제다. 이미 AI 기술 올림픽은 시작됐고 우리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우수한 AI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한국의 량원펑, 한국의 샘 올트먼이 나올 수 있겠는가. 두 천재 사업가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 그들을 뒷받침하는 인재들과 사업환경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성인 IT부장(seo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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