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나폴리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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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카밀드’의 마르게리타 피자. 화덕에서 굽는 나폴리 피자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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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피자는 ‘1인 1판’이 상식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호주 멜버른에서 요리사로 일할 때 나는 조각 피자만 먹었다. 자정 근처 주방 문을 닫고 길거리로 나서면 조각 피자를 파는 가판이 있었다. 한 조각에 1달러가 조금 넘는 피자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여러 번 망설였다. 어려운 결심 끝에 흐느적거리는 피자를 포장지에 받쳐 들고 먹노라면 곧 후회가 밀려왔다. 보잘것없는 피자 한 조각이 내 처지 같았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정말 이탈리아 나폴리에 가니 사람들은 정말 인당 한 판씩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러나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탈리아 갔던 생각에 나폴리 피자를 먹으려 해도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애초에 나폴리 피자 하는 집이 드물기 때문이다. 우선 나폴리 피자 전용 오븐이 필요하다. 나폴리 피자 협회의 인증이 필수는 아니다. 그러나 에스키모의 이글루처럼 생긴 피자 화덕이 없다면 흉내 내기도 어렵다. 내화 벽돌을 쌓아 만든 돔 안에 열을 가둬 내부 온도가 섭씨 400~500도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해야 1~2분 사이에 피자를 완성할 수 있다. 피자 오븐 하나를 위해 필요한 공간과 돈, 더구나 반죽부터 시작해 피자를 굽기 위한 기술까지, 쉽게 말해 아무나 못하는 음식이다. 도우가 두꺼운 미국식 피자에 비해 나폴리 피자는 얇다. 그만큼 쉽게 식고 또 수분에 피자가 빨리 흐늘거린다. 애초에 이 음식은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먹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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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카밀드’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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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후문, 경의선 숲길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이 집에 즉흥적으로 들어갔다. 나폴리식 피자를 한다는 그 집의 이름은 ‘카밀드’다. 정확하게 말해 같이 붙어 있는 ‘피제리아 더키’에서 피자를 가져오는 것이지만 주인장이 같기에 일종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카밀드’가 좌석이 더 여유롭고 곁들일 메뉴도 많아 여럿이라면 이 편이 좀 더 낫다. 하얀색으로 마감된 실내와 벽 쪽으로 길게 늘어선 주방, 그 안에는 팬을 붙들고 재료를 손질하는 남자들이 몇 있었다. 가게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가면 정원이 나오는데 뚫린 하늘과 널찍한 테이블에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먼저 감자튀김을 시켰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커다란 튀김기에 주문 들어온 것만 담아 튀기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튀기면 기름 온도가 내려가서 눅눅하고 기름을 잔뜩 먹은 튀김이 된다. 가장자리를 크게 부풀린 피자가 곧이어 나왔다. 발효를 전통적인 방식보다 오래 하여 더 많이 부풀어 오른 스타일이 돛단배를 닮았다 하여 이탈리아에서는 ‘카노토(canotto)’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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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카밀드’의 마르게리타 피자. 발효를 전통적인 방식보다 오래 하여 가장자리가 더 많이 부풀어 올랐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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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잘 만든 피자는 어떤 맛일까? 이탈리아 밀가루 특성이기도 하지만 씹으면 질기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입에 물었을 때 은은히 풍기는 산미와 장작 화덕에서 비롯된 살짝 탄 듯한 구수하고 짭조름한 맛이 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가운데로 갈수록 수분을 머금고 있어 입에 넣었을 때 빡빡하거나 거친 느낌이 들지 않아야 한다. 쫀득하지만 질기지 말아야 하고 탄 듯하지만 탄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수분을 머금되 질척거리지 말아야 하는 줄타기하는 듯한 그 식감과 맛을 이 집 피자는 가지고 있었다. 토마토의 신맛과 치즈의 단맛, 바질의 향긋함이 함께 느껴지는 ‘마르게리타’, 토마토소스와 잣, 하몽과 치즈 두 종류가 올라가 호화스러운 ‘일 트리콜로네’ 모두 식구들이 하나둘 집어대면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크림소스에 모르타델라 햄, 모차렐라 치즈를 크게 올린 ‘모르타델라’는 손가락에 묻은 치즈까지 쪽쪽 빨아대며 먹었다. 여기에 매콤한 굴 스파게티와 튀기듯 익힌 감자 뇨키를 곁들였는데 결국 폐허처럼 빈 테이블만 남았다. 마치 배고픈 병사들을 이끌고 진격하는 장군이 된 듯했다. 이 많은 손가락, 조잘거리는 작은 입, 피자 여러 판이 적게 느껴질 때 한숨이 나오다가도 빈 접시를 보니 높은 산을 오른 듯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런 기분이라면 1인 1판이 아니라 몇 판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의 남은 한 조각까지 모두 주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좋으리라.
#카밀드: 마르게리타 1만8000원, 일트리콜로레 2만2000원, 모르타델라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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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카밀드'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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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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