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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세기 초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백색함대’(Great White Fleet) 계획에 따라 대규모 해군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성장한 미국의 조선 산업 인프라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독일과 일본을 압도했고, 전쟁의 흐름을 연합군 쪽으로 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후에도 미국은 다른 나라가 흉내 낼 수 없는 초대형 항공모함을 비롯해 첨단 수상전투함과 잠수함을 연이어 건조했다.
영원할 것 같던 미국 조선업의 영광은 일본과 유럽 등 경쟁국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높은 인건비와 열악한 설비 탓에 미국 조선소는 경쟁국보다 비용은 2~3배 비싸고, 납기도 늦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주요 선사는 선박 발주처를 미국에서 한국과 일본, 유럽 등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미 해군의 피해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시울프급(Seawolf-class) 공격용 핵잠수함은 미 해군 핵잠수함 가운데 가장 성능이 뛰어난 모델이다. 고속 항해가 가능한 데다 놀라운 정숙성으로 ‘바다의 암살자’로 불린다. 2021년 10월 시울프급 2번 함 코네티컷이 남중국해에서 미상 물체와 충돌해 함수 부분이 대파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와 조선소에서 수리를 받기까지 무려 20개월을 대기해야 했다. 조선소의 낮은 작업 효율 탓에 미 해군이 긴급 수리 계약을 발주했지만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몰락한 미국 조선소의 현실이다. 미국은 1920년 연안 항구를 오가는 민간 선박은 자국 내에서만 건조하도록 한 존스법을, 1965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군함을 자국 조선소에서만 건조하게 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을 각각 도입해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해왔다. 결국 두 법안이 조선업 발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최근 미국 상원의원들 주도로 미 해군 함정 건조를 동맹국에 맡길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해외 기업에 미 군함 건조·수리를 막아온 번스-톨레프슨법을 60년 만에 수정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관련 법을 수정하려는 이유는 중국의 ‘해양 굴기’를 막기 위해서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해군력을 급격히 키우고 있다. 2000년만 해도 미국의 해군 함정 수는 318척으로 중국(110척)보다 세 배나 많았는데, 지난해엔 중국(370척)이 미국(295척)을 앞질렀다. 앞으로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이러니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 의회에 발의된 법안의 세부 조건으로 함정 건조 비용이 미 조선소보다 낮아야 하고, 외국 조선사는 중국 소유이거나 중국 투자를 받아선 안 된다는 규정을 명시했다. 이를 충족하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은 당장 배를 만들어 일선에 투입해야 하는데, 현재 신속하게 함정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은 한국이 일본을 크게 앞선다. 미 의회의 법안 발의가 한·미 군함 건조 동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고 할 수 있다. 동맹이 현실화해 미국이 세계 최강 해군력을 유지할지, ‘트럼프발’ 관세 폭탄 압박 속에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고로 제해권(制海權)을 가진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 더러는 배 한척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기대를 품을 만하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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