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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수)

[법조스토리]이재용 수사 실패한 檢 5가지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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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심의위 권고 무시한 기소

대법원 판례에 반해 배임죄 적용

기계적 항소 이어 의미 없는 상고까지

잘못된 검찰 수사 관행 바로잡는 계기 돼야

아시아경제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지만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회장의 23개 혐의 전부 무죄, 함께 기소된 법인 포함 나머지 13명 모두 무죄. 4년 5개월 재판 끝에 검찰이 받아든 성적표는 검찰 내 최정예 인력이 투입돼 국내 재계 순위 1위 기업의 총수를 수사한 결과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선별 절차를 생략했거나 피압수자에게 실질적인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들까지 살펴봤지만 혐의 입증이 안 된다고 결론 내렸다. 이쯤 되면 애초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고 봐야 한다.

이 회장이 기소된 직후 변호인단은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는 수사팀의 태도는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는데 괜한 말이 아닌 게 됐다.

실제 이 회장에 대한 수사나 기소, 공소유지 과정에서 검찰은 여러 차례 무리수를 뒀다.

먼저 검찰은 2020년 6월2일 이 회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자 이틀 뒤 갑자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수사심의위에서 수사 계속 여부나 기소 여부를 논의하는 게 무의미해지는 만큼 수사심의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두 번째로 검찰은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검찰이 자체 개혁 방안으로 도입한 제도인 만큼 앞서 8번의 수사심의위 결과를 모두 수용했던 검찰이지만 유독 이 회장에 대해서만 다른 행보를 보였다. 변호사나 법학 교수 등 전문적인 법지식을 가진 위원이 과반수였고, 표결에 참여한 13명 위원 중 10명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냈지만 검찰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세 번째로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기소할 명분이 필요했던 검찰은 두 달 넘게 시간을 끌며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부장검사 회의를 개최하더니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나 수사심의위에서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 혐의를 기습적으로 공소사실에 끼워 넣어 이 회장을 기소했다. 배임죄의 주체나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 비춰 볼 때 이 회장에게 적용이 어렵다고 이미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렸던 혐의였지만 수사심의위에서 다뤄지지 않은 새로운 혐의가 필요해 무리하게 끼워 넣은 것이었다.

네 번째로 1심에서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이 부정돼 전부 무죄가 선고됐을 때, 그때라도 검찰은 위법하게 수집하지 않은 증거들로 유죄 입증이 가능해 보이는 혐의에 집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능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오히려 공소장변경 신청을 통해 4개 혐의를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증거능력이나 혐의 입증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바뀌기 어렵다는 점이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상고한 것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무리에 무리가 거듭됐다. 이번 사건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탈피해 '사람과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할 수 있도록 검찰이 수사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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