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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이슈 프로배구 V리그

“오기노 감독님, 당신의 배구 철학이 팀 성적보다 우선인가요?” 방향을 잃은 OK저축은행의 2024∼2025시즌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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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결정전 준우승팀에서 최하위 꼴찌팀으로. 불과 한 시즌 만에 수직 낙하한 OK저축은행의 처지다. 그 이유를 모두 다 안다. 역대 최고의 외인이라 꼽히는 레오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오기노 마사지(일본) 감독의 아집에 가까운 선택 때문이라는 것을.

프로팀과 선수들에겐 승리가 최고의 목표여야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의 OK저축은행이 딱 그렇다. 지금 승리를 더 한다고 해서 봄 배구 희망이 있진 않다. 이럴 땐 눈앞의 승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의미 있는 패배가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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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13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의 맞대결에서 보여준 오기노 감독의 경기 운영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OK저축은행의 스타팅 라인업은 세터 이민규, 아포짓 스파이커 크리스, 아웃사이드 히터 송희채, 차지환, 미들 블로커 진성태, 진상헌, 리베로 정성현, 부용찬. 베테랑 위주의 라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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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흘 전인 9일 열린 KB손해보험전에선 오기노 감독은 세터 쇼타(일본), 아포짓 스파이커 신호진, 아웃사이드 히터 김웅비, 김건우, 미들 블로커 박창성, 박원빈, 리베로 정성현, 부용찬을 스타팅으로 내세웠다. 나흘 만에 리베로를 제외하면 전 포지션을 바꿔서 나온 것이다. 팀 운영의 방향성을 도통 읽을 수 없는 오기노 감독이다.

베테랑 위주로 내세웠지만, 0-3(20-25 23-25 21-25) 셧아웃 패배를 막을 순 없었다. 팀 리시브 효율이 9.68%에 불과할 만큼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현대캐피탈의 강서브에 리시브가 탈탈 털렸다. 자연히 팀 공격이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현대캐피탈의 블로킹에 10개나 막히면서 공격 성공률 46.84%, 공격 효율 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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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의 오기노 감독은 서브의 위력을 줄여서라도 범실을 극도로 줄이는 것을 선호한다. 그 바람에 이날 현대캐피탈의 팀 리시브 효율은 49.06%로 시즌 평균인 31.41%보다 훨씬 높았다. 자연히 레오(쿠바)-허수봉-신펑의 ‘삼각편대’에게 양질의 토스가 제공됐다. 레오 15점, 허수봉과 신펑 각각 13점. 정태준도 100%의 공격 성공률로 6개의 속공을 성공시켰다. 현대캐피탈의 팀 공격 성공률은 OK저축은행보다 10% 이상 높은 57.35%. 서브득점 6-0 압도. 팀 범실마저도 현대캐피탈이 23개로 OK저축은행(20개)보다 단 3개 많을 뿐이었다. OK저축은행이 이길래야 이길 구석은 단 하나도 없었던 셈이다. 각 세트에 20점을 넘긴 게 신기할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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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현대캐피탈을 만나 5전 5패. 15세트를 내주는 동안 따낸 세트는 단 두 세트. 이 모든 게 레오와의 재계약 포기 때문은 아니지만, 국내 선수층이 탄탄한 현대캐피탈에 레오의 합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어차피 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유망주 위주의 라인업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라도 나와야 할텐데. 베테랑 위주의 라인업. 그것도 나흘 전과는 180도 달라진 라인업의 이유를 패장 오기노 감독에게 경기 뒤 물었다. 그는 “경기 전날 연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웠다. KB손해보험전 이후 선수들에게 다음 경기에서는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이 선발로 나설 거라고 미리 예고했다”라고 답했다.

오기노 감독에 재차 물었다. 현재 팀 운영 기조의 방향이 무엇이냐고. 총론을 물었으나 오기노 감독은 이날 경기에 대한 얘기를 중언부언, 각론을 한참 얘기한 뒤 “누구나 공격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게 나의 지시사항이지만, 이번 경기에선 그 부분에서도 미흡했다. 감독 1,2,3년차에 따라 맞는 플랜을 갖고 있다. 이번 시즌은 이미 어려워졌지만, 우리의 배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시즌 마지막까지 보여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코트 위에서 실전을 많이 해보는 것보다 더 나은 플랜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오기노 감독은 리그 최강팀을 유망주 선수들이 상대할 기회를 그냥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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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를 코트 반대편에 올 시즌 다섯 번째 상대한 소회와 레오가 현재 OK저축은행에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높은 순위에 있지 않을까에 대해 물었다. 오기노 감독은 “레오와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많이 설명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기노 감독은 레오의 존재로 인해 팀 공격 패턴이 단순화된다며 트라이아웃 제도 하에서 뽑을 수 있는 최고수준의 외인과 결별을 택했고, 그 결과는 최하위 추락이다. 감독 개인의 배구 철학을 구현하는 게 팀 성적보다 우선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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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오기노 감독은 현대캐피탈의 승승장구에는 레오만의 요인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현대캐피탈의 경우 레오 말고도 수준이 높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다. 그래서 레오가 공격을 편안하게 구사하고 있다. 레오도 훌륭한 선수지만, 허수봉과 황승빈, 미들 블로커들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레오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혔다. 이어 “레오가 우리 팀에 남아 있었다면 더 잘 했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가정일 뿐이니다. 다만 공격 패턴이 단순화되는 상황을 피해야 더 나은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연 오기노 감독의 올 시즌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후퇴라고 볼 수 있을까.

안산=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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