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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금)

"50살도 넘었겠구만 무슨 학생" 그래도 꿋꿋했던 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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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경중·부경보건고 학생 412명 졸업식

배움에 대한 열정 뒤로 저마다 가진 아픈 사연

뉴시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이 열린 12일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만학도 졸업생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이날 졸업식에는 배움의 끈을 놓쳤던 60~80대 늦깎이 중·고교생 412명(중학교 22회 197명, 고등학교 23회 215명)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2025.02.12. yulnet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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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이아름 기자 = 어릴 적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또래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만학도(晩學徒)들이 수십 년 전의 꿈을 이뤘다.

12일 오전 10시 부산 사하구 은항교회. 늦깎이 학생 412명의 졸업식이 열리는 이곳은 본 행사 30분 전부터 졸업을 하는 가족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어머니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회사에 연차를 쓰고 왔다는 이성호(40대)씨는 "나이도 많은데 어렵고 힘든 것들을 해낸 것 같다"며 "진학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잘하는 것보다 즐겁게 배우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자신의 남편, 딸과 함께 졸업식에 온 한 졸업생은 감회가 새로운 듯 붉은 눈시울로 웃으며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재학생들로 구성된 학생회는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반갑습니다' '축하합니다'라며 선배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곳에 모인 졸업생들은 부경중학교(2년제), 부경고등학교(2년제) 학생들이다.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모인 학생들의 연령대는 60~90대로, 이중 최고령자는 중등부 이상칠(99)씨다.

허리가 굽은 상태의 이씨는 다림질로 빳빳해진 정장 차림으로 단상 위에 서서 중등부 졸업장을 건네받았다. 이를 본 행사장의 학생들은 "아저씨, 참 대단하다"며 글썽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함께 학교에 다닌 졸업생들을 위한 '부부면학상' '자매면학상' 등 재치 있는 수여식도 진행됐다. 상 이름이 호명되자 학생들은 "아이고 별걸 다 준다"라며 폭소를 터뜨리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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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이 열린 12일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만학도 졸업생들이 상장을 받은 뒤 무대를 내려오고 있다.이날 졸업식에는 배움의 끈을 놓쳤던 60~80대 늦깎이 중·고교생 412명(중학교 22회 197명, 고등학교 23회 215명)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2025.02.12. yulnet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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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졸업생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 뒤로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부산과 진주를 통학한 고등부 졸업생 A씨는 학생이라는 것을 부정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4년 동안 학생 요금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승차권을 본 기사가 '나이가 50도 넘었겠구만 무슨 학생이느냐. 내려라'라고 윽박질렀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모욕감을 느꼈지만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손님들 보기 부끄럽고 미안해서 내렸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컴퓨터 과목 시험이 있던 그날 아침 A씨는 허무하게 첫 차를 놓쳤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A씨는 "학교에서 한약재 만드는 법을 배웠다. 공진단, 경옥고를 만들면 1번 타자로 우리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 줄 거다"라며 웃었다.

이날 학업 우수상을 받은 고등부 정재숙(60대)씨는 10년이 넘도록 파킨슨병을 겪던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왔다.

정씨는 "부경중학교를 졸업할 때 고등학교에 못 갈까 봐 걱정이 많았다. 남편이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집을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다행히 잘 견뎌줘서 고등학교까지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20일 정씨는 남편을 떠나보내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꿋꿋이 학업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고. 정씨는 오는 3월 동의과학대학 부동산재택과 입학을 앞뒀다.

이 외에도 재학 중 암이 발병했지만 항암 치료를 하며 학업을 이어온 학생, 10년 전 이민을 갔지만 어머니의 병간호와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를 찾은 학생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만학도들이 있었다.

웃음과 눈물로 가득 찬, 말 그대로 웃픈 졸업식은 이 학교의 경례 인사로 마무리됐다. 새 희망을 가슴에 안고 학교를 떠나는 졸업생과 재학생, 교사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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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이 열린 12일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만학도 졸업생들이 손하트를 만들며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이날 졸업식에는 배움의 끈을 놓쳤던 60~80대 늦깎이 중·고교생 412명(중학교 22회 197명, 고등학교 23회 215명)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2025.02.12. yulnet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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