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이 많아 못 하는 건 없어"
큰아들 부부, 3년 내내 등하교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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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2024학년도 늘푸름학교 졸업식에서 최고령 졸업생인 김옥순(93)씨가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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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대단하게 봐주시고 큰 상을 주신다니 신기할 따름이네요."
백발이 성성한 만학도 김옥순(93)씨는 12일 뜻깊은 상을 받는다. 서울 시내 성인문해교육 과정을 마친 졸업생 650명 중 최고령으로, 이들을 대표해 서울시교육청이 수여하는 '서울시 모범학생상'을 수상하는 것. 100세를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큰 상을 받게 된 김씨는 "세상에 나이가 많다고 못 하는 건 없고, 그저 용기가 없을 뿐"이라며 "언제든 용기를 내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등포구가 운영하는 중학교 과정인 늘푸름학교를 지난달 마쳤다. 김씨는 당시 졸업식에서 영어로 "헬로! 아임 옥순 킴 프롬 신길동. 아임 리얼리 해피 투데이!"라고 소감을 말해 환호와 큰 박수를 받았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중학교가 들어서지 않아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무려 80년 만에 중학교 졸업장을 품에 안은 순간이었다. 김씨는 "평생 한이었던 중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지난 3년을 회고했다. 18세에 결혼해 5남매를 낳고 키우느라 긴 세월 못 배운 한을 묻어둔 채 살았다는 김씨는 "90세가 넘어 평생의 한을 풀 수 있는 큰 기회를 잡아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항상 스무 살의 마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덕인가 봐요."
그의 도전 정신은 부단한 노력에 힘입어 늘푸름학교 생활 동안에도 빛을 발했다. 수업 중 교사의 질문에 가장 먼저 손 드는 '발표왕'이었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잠들기 전까지 배운 내용을 모조리 따라 쓰는 '노력파'였다. 김씨는 "배우면서도 즐거웠지만, 먼저 터득한 것을 다른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때 특히 즐거웠다"며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스스로 성장한다는 뿌듯함이 컸다"고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아이들 돕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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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구청 별관에서 열린 2024학년도 늘푸름학교 졸업식에서 최고령 졸업생인 김옥순(왼쪽)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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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꿈을 이루게 된 데에는 가족의 도움도 컸다. 2022년 구청 소식지를 통해 늘푸름학교가 입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김씨에게 알린 건 김씨의 큰며느리(64)였다. 15년간 노인복지관에서 열리는 영어교실 수업을 들으며 알파벳부터 배우기 시작해 문장을 막힘없이 읽을 만큼 남다른 김씨의 '공부 욕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녀 권은영(33)씨도 발 벗고 나섰다. 까마득한 국민학교 졸업 이력을 증명하기 위해 졸업장을 찾아 울산에 있는 김씨의 모교까지 연락하고, 동주민센터를 전전하면서 입학 원서를 함께 준비했다. 큰아들(68) 부부는 3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김씨의 등하교를 도왔다. 김씨는 "늙은 나이에 학교 다닌다고 유치원생 등하원시키듯 매달려서 보살펴 준 가족들에게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인근에 고등학교 학력이 인정되는 학교가 없는 탓에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지만, 김씨의 배움을 향한 열정은 계속될 예정이다. "동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도 다니고,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노인복지관도 다시 갈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직접 영어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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