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로 떠올려진 스푸트니크 순간
국가 주도 아닌 미국식 유인체계 산물
최고 인재의 기술창업 풍토 조성해야
국가 주도 아닌 미국식 유인체계 산물
최고 인재의 기술창업 풍토 조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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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공지능위원회에서 열린 국내 AI 산업 경쟁력 진단 및 점검 회의에서 딥시크 AI의 주요 특징 관련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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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957년은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때까지 과학기술에서 한 단계 아래로 여겼던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다. 공산국가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이 미국 못지않거나 그 이상일 수 있음을 벼락같이 인식시킨 충격의 사건이었다. 사회적 충격은 일련의 변화를 가져왔다. 공산국가의 국가주도형 과학기술 연구체제의 성과를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각성이 촉구됐다. 이에 대적할 정부의 과학기술 프로젝트 기획 기능과 실행체제 구축이 있었다. 더불어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정책 개혁도 추진됐다. 이후 국가적인 각성과 정책 전환을 야기하는 사건을 뜻하는 표현으로 '스푸트니크 순간'이 자리 잡는다.
지난 1월 말 중국이 새로운 유형의 AI모델 딥시크(DeepSeek)를 내놓자 거의 사라진 단어였던 '스푸트니크 순간'이 다시 여러 국가에서 유행어로 떠올랐다. 1957년의 소련과 2025년의 중국이 갖고 있는 유사성으로, 딥시크 출현에서 스푸트니크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의 국가 주도 정치경제체제이다. 또 그동안의 눈부신 경제발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선진국 수준은 아니다. 그러한 중국이 최첨단 기술혁신을 선도할 수준에 도달하였단 말인가. 중국을 앞서 있다고 자부하였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우려스럽게 나온 반응이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대열에 올랐고,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선진국 의식이 있었으므로 비슷한 색깔의 여론이 적지 않았다.
과연 딥시크 출현은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스푸트니크는 소련 국가체제의 산물이었지만, 딥시크는 순수한 중국 국가체제의 산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딥시크의 발명자 량원평은 중국 대학에서 수학하였으므로 순수히 중국 교육체제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딥시크 발명에 이르게 된 그의 경제활동은 중국의 사회주의형 국가체제와는 거리가 있다. 경제활동의 궤적을 보면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량원평은 오히려 미국 AI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오픈AI CEO 샘 올트먼과 비슷한 유형이다.
량원평과 올트먼은 1985년생 동갑이다. 천재로 소문난, 두 사람은 대학에서 똑같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다. 이후 IT전문가로서 선택한 삶도 학계나 연구소가 아니라 금융시장이었다. 올트먼은 IT전문성을 벤처투자에 활용하고자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활동하였고, 이때 얻어진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을 바탕으로 오픈AI를 창업하였다. IT기술 전문성을 기반으로 창업, 개발과 투자활동을 병행하는 유형의 기업가들이 실리콘 밸리의 AI산업을 이끌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부를 일궈내었고, 이것이 시장경제가 제공한 유인기제였다.
량원평은 주식투자에 IT기술을 활용하고자 헤지펀드를 창업하였다. 딥시크 개발도 헤지펀드 운용기법 개선이 본래 목적이었다. 량원평 유형의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뉴욕에서 훨씬 찾기가 쉽다. 요컨대 딥시크를 낳은 유인체계와 제도는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본진인 정부 연구소나 국영 기업이 아니었다. 중국 경제체제의 비주류 영역이었고 최근 들어 중국 정부의 통제가 강해진 미국식 자본시장이었다.
딥시크 현상이 스푸트니크와는 다른 것이라면 도출해야 할 교훈도 정부가 나서 기획을 하고 국가적으로 기구를 만들자는 식의 대책 마련을 넘어서야 한다. 최고 인재들이 기술전문가가 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창업 기업가, 투자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왜 드문지에 대한 성찰이 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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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석 중앙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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