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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들의 즉각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인질 마탄 잔가우케르의 어머니인 에이나브 잔가우케르(맨 앞)씨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 앞에 서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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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워싱턴 DC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를 겨냥해 “15일까지 이스라엘 인질 전원을 석방하지 않으면 가자지구 휴전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마스의 인질 석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온갖 지옥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하마스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이 “15일 예정됐던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은 별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하겠다”고 발표하자 ‘지옥’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휴전 파기라는 ‘맞불’을 놓은 것이다. 트럼프 발언이 알려진 뒤 하마스도 “(휴전) 합의가 인질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고, 위협적인 언어는 가치가 없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며 트럼프를 공격했다.
15개월간 전쟁을 벌이다 지난달 말 가까스로 성사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이 보름도 되지 않아 중대 위기를 맞았다. 하마스가 예정된 인질 석방을 미루자, 트럼프가 직접 응징을 예고하고, 이스라엘은 경계를 강화하면서 전투가 재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취임 첫 정상회담 상대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뒤 중동 정세가 위태해지고 있다.
앞서 알카삼 여단은 이날 텔레그램에 “15일 예정된 인질 석방은 별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지난달 29일 휴전 돌입 뒤 다섯 차례에 걸쳐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 16명을 풀어줬다. 이와 별도로 이스라엘에서 일하다 납치된 태국인 노동자 다섯 명도 석방했다. 이스라엘은 교도소에 수용돼 있던 팔레스타인인 730명을 풀어줬다. 그런데 하마스가 돌연 예정된 인질 석방을 보류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강력 반발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하마스의 인질 석방 중단 선언은 휴전 합의를 완전히 위반한 것”이라며 “가자지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출 것을 군에 지시했다”고 했다. 여기에 트럼프까지 강경 발언으로 하마스를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는 하마스에 “(석방 시한으로 잡혀 있는) 토요일 열두 시까지 몇 명이 아닌 전부를 풀어줘야 한다”고도 했다.
어렵사리 유지되던 휴전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트럼프가 ‘미국이 가자지구를 갖겠다’는 발언을 하면서다. 트럼프는 지난 4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소유해 리비에라(지중해 호화 휴양지)처럼 개발하고 주민들은 이주시키겠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현실성 없는 엄포로 자신의 의도대로 길들이려는 트럼프식 어법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후 트럼프 발언의 수위는 변함이 없다.
트럼프는 전날 수퍼볼 결승전 참관을 위해 뉴올리언스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우리가 가자지구를 재건하는 동안 중동 다른 나라에 일부를 건설하게 할 수도 있다”며 “우리는 그것(가자)을 소유할 것이며, 하마스가 돌아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올 권리가 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지난 8일에는 하마스 억류에서 송환된 이스라엘 인질 세 명에 대해 “마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들처럼 보였다”며 “어느 순간 우리는 인내심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쟁의 도화선이 된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인질 납치를 벌인 하마스를 나치에 빗댄 것이다.
하마스는 인질 송환을 중단시킨 이유로 “이스라엘이 북부로 귀환하는 피란민들을 막아서고 발포했으며, 구호품 지급을 방해하는 등 휴전 합의를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강성 발언이 잇따르면서 존립 자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하마스가 벼랑 끝 전술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당장 이번 인질 석방 중단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1단계 석방과, 향후 논의 중인 2단계 석방이 험난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달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예정된 1단계 휴전 기간 동안 하마스는 이스라엘 인질 33명을 풀어주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2000명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양측은 1단계 휴전안이 순조롭게 이행될 경우 억류 이스라엘 인질의 전원 석방을 골자로 하는 2단계 휴전안에 돌입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강성 발언에 하마스가 반발하면서 휴전 구상이 틀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추방하고 지역을 재건하겠다고 밝힌 트럼프 발언을 문제 삼으며 미국의 명확한 의사를 확인할 때까지 2단계 휴전 회담을 연기한다고 이스라엘 측에 알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강경 발언은 주변 중동 국가들까지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트럼프는 10일 “요르단과 이집트가 향후 가자지구에서 이주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원조를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구상을 따를 것을 압박한 것이다. 미국은 두 나라에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연간 15억달러(약 2조1800억원)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요르단에 영구적으로 원조를 삭감한다면 경제와 안보에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했다.
휴전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억류 이스라엘 인질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풀려나지 못한 이스라엘 인질은 76명이고 이 중 33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한 명인 알론 오엘(24)의 어머니 이디트 오엘은 텔아비브에서 열린 집회에서 “내 아들은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모든 생존 인질이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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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김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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