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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 (금)

상가·주차장 '텅텅'… 공사비 없어 도로·상수도 설치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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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분양 직격탄 현장 ◆

매일경제

지난 7일 경기도 안성시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난달 31일 입주를 시작했지만 단지 내 지하주차장은 비어 있다. 작은 사진은 인근 부동산에 이 단지 분양권을 할인 판매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는 모습.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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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방문한 경기도 안성 일대 부동산 시장은 한눈에 봐도 분위기가 사뭇 심각했다. 불 꺼진 집이 꽤 많았고, 단지 내 상가도 편의점과 공인중개업소 몇 개만 보일 뿐 텅 비어 있었다.

지난 1월 말 입주를 시작한 한 아파트단지는 전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서는 "5000만원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분양권을 판매한다"고 이야기했다. '언제쯤 입주가 끝날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주차장이 널널해 살기엔 편할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전날 둘러본 경기도 평택시 화양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화양지구는 279만여 ㎡를 개발하는 미니 신도시급 사업지로 총 2만가구, 인구 5만5000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민간 주도 도시개발사업 중에서는 꽤 큰 규모다. 삼성전자 캠퍼스를 끼고 있어 평택시에서도 핵심지로 꼽히는 고덕신도시 일대까지 자동차로 30분 걸린다.

입주를 앞둔 화양지구 아파트에선 계약금 10%는 물론 옵션비까지 모두 포기하겠다는 집주인이 나타났다. 이 단지에서는 분양권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최대 4900만원에 달했다. 화양지구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작년만 해도 '마피' 1500만원 정도면 분양권을 팔 수 있었는데 지금은 4000만원 이상 손해를 보고 나가려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평택, 이천, 오산, 안성 등 경기도 남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이 꿈틀댔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집값 상승률, 외지인 매매 비중, 갭투자 비율 등이 전국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집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양 물량이 쏟아진 상태에서 2022년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자 조정을 심하게 받고 있다. 최근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는 현상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미분양 아파트만 4071가구(2024년 말 기준)에 달하는 평택시의 경우 준공 후 미분양은 아직 없다. 분양한 아파트들이 대부분 현재 건설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서는 경기도 남부 지역 미분양 아파트들이 1~2년 내에 준공 후 미분양으로 돌변해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심심찮게 나온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평택의 경우 올해부터 3년간 2만9455가구가 입주한다. 평택시 인구로 추산한 적정 수요(매년 2500여 가구) 대비 무려 10배다. 매일경제가 경기도 남부 지역의 미분양 단지 목록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올해부터 내년까지 입주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이천과 오산 등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2010년대 초반에 인천과 경기 지역에서 준공 후 미분양이 쏟아지면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침체로 몰아넣었다"며 "경기도 남부 지역의 지금 추세로 볼 때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9년 2259가구였던 경기도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이듬해 7405가구까지 폭증한 바 있다.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미분양 물량을 떨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양지구에 조성되는 '평택 푸르지오 센터파인'은 작년 말 계약자에게 축하금 500만원을 지급하고, 계약자 한정 추첨을 통해 자동차 경품을 주는 이벤트까지 벌였다.

일각에서는 2010년대 초반 이후 사라졌던 '안심보장제'가 부동산 시장에 다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안심보장제란 계약자가 부동산을 계약한 뒤 시행사 또는 분양대행사가 할인 분양 등 새로운 혜택을 제공하면 기존 계약자들에게도 이 혜택을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화양지구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 개발 핵심인 기반시설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공사비 체납으로 미수금이 늘어나면서 시공사가 공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공사 측은 밀린 공사비 납부와 함께 향후 자금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보증이 있어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평택·안성 박재영 기자 / 서울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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