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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수)

의원 vs 인원, 체포 vs 검거…尹탄핵 용어 공방, 다 계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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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이 열린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윤 대통령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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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때 아닌 낱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증언대에 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12·3 계엄군 주요 사령관들도 제각기 형사재판을 앞두고 불리한 발언을 피하기 위한 외줄타기를 벌이면서다.



여인형 “체포 명단, 용어 자체도 다퉈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지난 4일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체포’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거부했다. 여 전 사령관은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특정 명단에 대한 위치 파악을 요청한 사실 자체는 시인했다. 다만 그는 “체포 대상자라고 제가 확정적으로 말씀드린 바도 없고, 그런 용어(체포 명단) 자체도 형사 법정에서 다퉈야 한다”며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국회 측이 “그럼 ‘위치 추적 대상자 명단’이라고 하자”며 표현을 바꿔 질문했지만 마찬가지로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이날 단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군인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많다. 군인은 말을 간명하게 하도록 훈련받는다” “‘체포 명단’, ‘검거 명단’ 등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굉장히 많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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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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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역시 지난 6일 6차 변론에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끄집어내라는 지시 대상이 ‘의원’ ‘요원’ ‘인원’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곽종근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4일 0시 30분쯤 전화해 “아직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은 즉각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고 했다더니 오늘 들으니 내가 의원이라고 한 적 없고 본인이 그렇게 이해했다는 것”이라며 “사람이면 사람이지, 인원이라는 표현을 써 본 적이 없다”고 신빙성을 공격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3일 김용현 전 장관 증인 신문에서 “‘의원’이 아닌 ‘요원’을 빼내라고 했다”는 주장한 바 있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윤 대통령이 같은 날 변론에서 ‘불필요한 인원을 통제’ ‘20명이 안 되는 인원’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윤 대통령 진술의 의미는 이 사람, 저 사람 등 지시대명사로 이 인원, 또는 저 인원이라는 표현을 안 쓴다는 뜻”이라고 재차 반박에 나섰다.

앞서 이른바 ‘최상목 쪽지’에서 언급된 ‘비상입법기구’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측은 “단어 사용에 오해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쪽지에서 거론된 ‘비상입법기구’는 국회를 대체할 입법 기관이 아니라 긴급재정 입법권(명령권)을 수행하기 위한 기재부 내부 조직이라는 취지다. 김용현 전 장관은 지난달 23일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비상입법기구란 단어로 오해가 되는데 국회를 대신할 거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질문에 “제가 쓸 때 잘못 실수로 쓴 것 같다”고 답했다.



의원보다 넓은 ‘인원’, 검거보다 강한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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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로 출동한 계엄군을 4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보좌진과 당직자 등이 막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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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용어 사용을 둘러싼 이같은 공방이 법원에서 진행 중인 내란 혐의 형사재판에 대비한 각자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다 추상적인 단어를 선택하면서 형사재판에서 다툴 수 있는 여지를 하나라도 더 남겨두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한상훈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예를 들어 인원은 의원이나 요원에 비해 상당히 추상적인 단어다. 인원에는 의원도, 군인도 포함될 수 있다”며 “‘의원을 끌어내라’고 한다면 문구 자체로 완벽한 불법이지만, ‘인원’이라면 문맥을 갖고 논쟁이 벌어지고 법원에서는 대화의 앞뒤 상황 등 정황증거를 가지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이 ‘체포’와 거리두기를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붙잡았다’는 차원에서 넒은 의미로 쓰이는 검거와는 달리 ‘체포’는 형사소송법상 용어로, 법적인 요건이 돼야지만 체포를 할 수 있다”며 “‘체포 명단’이라는 용어 자체가 포고령 위반 여부와 관계없는 체포를 전제해 불법이 내포돼있다”고 설명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만일 헌재에서 ‘체포’ 목적 자체를 인정해버리면 형사재판에서는 이를 다시 자세히 다투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데리고 나오라고 한 사람들이 국회의원 맞나”라는 국회 측 질의에 “정확히 맞다”며 구체적 진술을 했다. 이에 윤 대통령 측은 곽 전 사령관에게 “수사기관 조서와 국회 진술을 비교해보면 ‘사람’이 ‘인원’으로, ‘데리고 나와라’가 ‘끄집어 내라’로 바뀐다”며 단어 사용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 역시 곽 전 사령관의 진술이 추상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피청구인 측에서 용어를 가지고 다투는 건 증언의 신빙성을 탄핵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며 “다만 법원은 진술의 신빙성을 전체적인 맥락으로 따지지, 용어 하나하나로 묻지는 않는다. 용어가 바뀌었다고 반드시 진술을 번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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