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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美 압박에 파나마도 탈퇴… 中 ‘일대일로’ 수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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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서 불참 선언 잇따라

조선일보

2018년 12월 파나마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왼쪽에서 셋째)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오른쪽에서 둘째) 여사와 함께 파나마운하를 방문해 운하를 통과하는 중국 상선 선장과 무전기로 통화하고 있다. 중국은 파나마를 중남미 일대일로의 거점으로 육성해 왔지만, 파나마는 최근 일대일로 탈퇴를 선언하며 중국의 반발을 샀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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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움베르토 레카로 바르세나스 중국 주재 파나마 대사는 지난 8일 베이징 외교부에 불려 들어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오즈위안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바르세나스 대사에게 “(파나마가) 일대일로(一 帶一路)에서 역행하는 건 중국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이자 파나마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일”이라고 따졌다. 전날에는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파나마가 일대일로 사업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한 미국의 야비한 방해 공작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이 탈(脫)일대일로 방침을 밝히자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 행정부 출범과 함께 강력한 중국 견제가 진행되면서 중국의 경제·군사적 영토 확장 사업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중국이 중남미 일대일로의 거점으로 공을 들여온 파나마가 일대일로에서 빠진 것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핵심 해운로인 파나마 운하를 소유·운영하는 파나마는 2017년 100년 넘게 수교해 온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시진핑은 이듬해 파나마를 방문해 직접 운하를 둘러볼 정도로 이 지역에 공을 들였다.

그런 파나마가 출범 전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이 됐다. 운하의 다섯 항구 중 대서양·태평양의 한 곳씩을 홍콩 기업 허치슨 포트 PPC가 운영하는 점을 겨냥해 “중국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1999년 파나마에 넘긴 운영권을 되찾아 갈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미군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됐고 1989년 조지 H W 부시 행정부가 파나마를 침공해 군부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한 사건까지 소환됐다. 이 같은 미국 압박에 파나마가 결국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나마를 시작으로 일대일로에 참여 중인 개발도상국·약소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공세가 이어질 경우 ‘제2·제3의 파나마’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파나마의 일대일로 탈퇴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남미 등에서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억제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신호탄”이라며 “트럼프는 특히 중국과 ‘약한 연결 고리’로 이어진 국가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취임 이후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트럼프가 외교 영역에서도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이런 흐름 속에 동유럽 국가 중 친중 성향이 가장 강하고 일대일로 핵심 참여국인 세르비아에서도 일대일로 관련 이상 신호가 커졌다. 일대일로 사업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격화하면서 집권당 총리가 물러난 것이다. 세르비아 진보당 소속 밀로시 부체비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사임을 발표했다. 그가 사임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11월 세르비아 제2 도시 노비사드 기차역 지붕이 붕괴해 15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이 공사는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중국 국영기업 컨소시엄이 보수 작업을 맡아왔는데, 정부가 사고의 진상 규명 요구를 거부해 반발을 불렀다. 여기에 당시 공사를 발주할 때 노비사드 시장이 부체비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정부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어그러진 일대일로가 세르비아에 정치적 위기까지 가져왔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회원국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흥국 협의체 브릭스(BRICS) 내에서도 일대일로 관련 이상 동향이 감지된다. 브릭스 원조 창설 멤버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해 10월 일대일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표는 시진핑의 브라질 방문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중국 외교의 굴욕으로도 비쳐졌다. 당시 룰라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강력한 중국 견제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또 다른 브릭스 회원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대일로도 입지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트럼프가 8일 남아공 원조를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경제적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토지 수용 정책을 “(흑인들의) 백인 농장주들에 대한 부당한 역차별”이라며 남아공을 공격해 왔다. 이 같은 트럼프의 행보에는 아프리카의 경제 대국 남아공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현지 일대일로 사업의 동력을 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의 공세에 중국은 ‘철도 확장’ 카드로 일대일로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6일 중국을 방문 중인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를 만나 신규 철도 건설 사업을 논의했다. 패통탄 내각이 지난 4일 방콕에서 라오스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3400억밧(약 14조6000억원) 규모 고속 철도 2단계 구간 공사를 승인하면서 중국의 참여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앞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라오스·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자국을 연결하는 철도망을 구축했거나 계획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시진핑이 2013년 제시한 중국의 대외 팽창 정책.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21세기판 육·해상 신실크로드를 개척해 중국과 연결한다는 개념이다.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미국의 손이 닿지 않는 개발도상국에서 기반 시설을 깔고 사실상의 군사 기지·보급 거점을 확보하며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일부 참여국이 과도한 채무를 떠안고 국가 재정이 악화하는 등 후유증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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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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