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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주계약자로 참여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격납건물에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국기가 걸려 있다. 한국전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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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국외 핵발전(원전) 수출 사업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정산을 두고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집안싸움’이 한창입니다. 한수원이 ‘팀 코리아’를 대표해 입찰에 참여한 한전에 약 10억달러(약 1조4578억원)의 추가 비용을 지급하라 요구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법적 다툼까지 가지 않으려 이달 초 양사 사장이 만났지만,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났습니다. 왜 이런 분쟁이 발생한 걸까요?
쟁점1: 분쟁의 단초가 된 ‘팀 코리아’
“400억달러 수출 쾌거… 쏘나타(중형차) 100만대 수출 효과”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2월 한국이 바라카 신규 원전 4기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뒤 정부가 밝힌 경제 효과입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국운이 있다”며 바라카 원전 수주를 “건국 이래 사상 최대 플랜트 수출”이라고 자평했습니다. 당시 바라카 원전 입찰엔 한전이 연합체(컨소시엄)를 꾸려 참여했습니다. 원전 시공 경험이 더 많은 한수원 대신 국내외 브랜드 파워가 더 큰 한전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었습니다. 한전이 계약을 따내고 주요 사업인 시공과 시운전 등을 하청 주는 방식은 정산금 분쟁의 단초가 됐습니다.
한수원은 당시 협력사로 참여해 바라카 원전 건설 과정에서 시공 인력 관리와 시운전 업무 등을 맡았습니다. 하루 최대 3천명까지 투입되는 전문 인력 등을 한수원이 고용해 한전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10년 이상 걸리는 원전 건설에선 중장기적 시공 관리가 중요하다”며 “공기 지연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졌고 수차례 설계가 변경됐지만 비용 정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전의 부족한 시공 관리 능력을 꼬집었습니다.
한전은 그동안 바라카 원전 1~4호기 건설 사업 중 협력사들이 추가로 요구한 정산금 액수를 비롯해 사업 전체 매출이익 등을 일절 밝히지 않았습니다. 국회 압박에 못 이겨 지난해 상반기 기준 “매출이익이 3600억원이어서 적자는 아니다”라는 비공식 입장을 낸 게 전부였습니다. 이마저도 한수원 등 협력사에 줘야 할 정산금을 빼면 조 단위 손해를 봤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쏘나타 100만대 수출 효과는커녕, 중형차 수만대를 공짜로 빼앗긴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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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2: ‘집안싸움’ 화해 가능성은?
업계에선 한전과 한수원이 조속히 분쟁을 해결할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양쪽이 생각하는 정산금액 차가 클 뿐만 아니라, 한전이 모회사란 지위를 이용해 한수원이 요구한 정산금을 조정할 경우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전과 한수원이 지난해 12월 각각 228억원(김앤장), 1300만달러(약 190억원·피터앤김)을 들여 법률대리인을 선임한 이상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의 판단이 나와야 분쟁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수원은 모회사인 한전이 정기 배당금을 안 받는 방식으로 정산해주길 기대하는 눈치이지만, 총부채가 200조원를 넘은 한전의 코도 석자인 상황입니다.
한데 ‘팀 코리아’의 정산금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라카 원전 건설 시공사로 참여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도 2017년 초 한전을 상대로 추가 정산을 요구하며 국제 중재를 걸었습니다. 공기 연장, 공사비 증액분에 대한 요구 비용만 약 5억달러(약 7290억원)에 달했습니다. 이후 한전의 일부 책임을 인정해 약 300억원 추가 비용을 지불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결국 삼성과 현대는 이번 체코 원전 수주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플랜트 업계 관계자는 “시공 관리 능력이 부족한 한전이 무작정 수주한 뒤 비용 증가 리스크를 협력사에 떠넘겼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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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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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3: ‘온타임 위딘버짓’의 명과 암
에너지 업계에선 “왜 아랍에미리트 쪽이 빠진 채 한전-한수원 사이 공사비 분쟁이 일어났는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발주사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단’에게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기 어려운 계약 구조 때문에, 한전과 협력사들의 추가 정산금 분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국이 공사를 맡긴 나라에 추가 정산금을 요구하기 어려운 이유는 ‘온타임 위딘버짓’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예산 범위 안에서 공사한다’는 뜻의 온타임 위딘버짓은 한국이 국외 원전 입찰에서 ‘필살기’로 내세우는 조건입니다. 정부는 이번 체코 원전 우선 협상자 결정에서도 해당 전략이 유효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쟁력으로 내세운 이 전략이 오히려 원전 수주의 경제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10년 이상이 걸리는 원전 완공까지 인건비 상승과 설계 변경 등 수많은 비용 증가 요인이 발생하고, 법·제도가 다른 국외 사업 특성상 이런 요인을 더 통제하기 어렵다”라며 “정해진 돈으로 제때 원전을 지어준다는 약속은 기술력에서 뒤진 쪽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손해 보고 지어주겠다고 호구 잡히는 전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 등이 경쟁력이 없어 한국보다 더 비싼 입찰 비용을 써낸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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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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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4: '정권 총력전'과 원전 수출의 결말
게다가 과거 바라카 원전과, 현재 최종 계약을 앞둔 체코 두코바니 원전 모두 수주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총력전’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명박, 윤석열 보수 정권에서 모두 국외 원전 수출이란 결과를 냈는데, 두 정부 모두 수주(체코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해 용산 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으로, 윤석열 정부는 총선 참패 직후였습니다. 이런 ‘정치적 동기’에 의한 원전 수주는 우리 쪽에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바라카 원전 수주를 위해 특전사 파병 및 군사지원 등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월 체코 방문에 삼성, 현대차, 에스케이(SK), 엘지(LG) 등 그룹 총수들을 대동한 것도 현지 투자를 주문하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올 10월 체코에선 집권여당을 결정하는 연방하원 총선이 예정돼 있는데, 3월 본계약을 따내려는 한국이 어떤 ‘선물 보따리’를 풀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전문가들은 “10년 이상 걸리면서도 관련 정보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원전 수출 프로젝트의 고질적 병폐를 줄이기 위해 우선 입찰 조건 및 매출이익 등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원전 수주 당시엔 조 단위 수출 성과를 홍보해놓고, 막상 사업이 끝난 뒤엔 얼마만큼 이익을 남겼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후 정산금 분쟁이 벌어져도 15년 전 계약 당사자들은 대부분 은퇴한 뒤”라면서 “국민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는 정부 공기업의 사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만 국외 원전 수출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한전은 “수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 중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계약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주계약자로서 협력사들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며 “아랍에미리트 발주처로부터 최대한 많은 '추가 비용'을 받아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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