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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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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봉 | 법조팀장
사람을 일단 믿는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믿어봤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탄핵심판에서 비상계엄 당시 군사령관들에게 전화한 것은 “안전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도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을 생각이 없었고 우원식 국회의장 등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버겁겠지만 공감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보자.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윤 대통령에게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해 12월4일 0시30분이다. 물론 윤 대통령의 뜻은 달랐다.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에서 “티브이(TV)로 보니 국회 상황이 혼잡하고 수천명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 현장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토록 친절하고 사려 깊은 비상계엄이라니.
그런데 윤 대통령의 전화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갔다. 우리나라 최정예 특수부대인 707특수임무단은 윤 대통령의 전화 4분 뒤인 0시34분 국회 본청의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진입한다. 이때까지는 윤 대통령의 사려 깊은 뜻이 현장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믿자. 곽 전 사령관은 0시50분 김현태 707특임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기라도 차단하는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국회의원과 보좌관, 기자 등이 적어도 수백명이 모여 있던 당시 국회 본청의 전기를 끊으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안전을 우려한 윤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이상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곽 전 사령관은 0시50분이 넘은 시각 박안수 당시 계엄사령관에게 전화해 테이저건과 공포탄 등 무기 사용 권한에 대한 지침을 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할 도리가 없는 궁박한 상황에서 최악의 방안까지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모두 윤 대통령의 전화 이후 벌어진 일이다.
그래도 믿어보자. 곽 전 사령관이 유독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 지난해 12월19일 윤 대통령의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윤 대통령은 체포의 ‘체’ 자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당시 국회로 출동한 국군방첩사령부 출동조의 단체대화방에는 지난해 12월4일 0시51분 “모든 팀은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중 보시는 팀 먼저 체포해서 구금시설(수도방위사령부)로 이동하시면 됩니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 정도면 방첩사는 여인형 전 사령관부터 현장 출동 군인까지 모조리 항명 세력인 셈이다.
혹시 모르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황도 살펴보자.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탄핵심판에서 “내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내린 지시는 (선관위에서) 무슨 장비, 어떤 시스템이 가동되는지 보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부정선거가 의심되니 장비와 시스템을 파악해보라는 지시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1일 민간인인 노상원이라는 자는 정보사령부의 문상호 당시 사령관과 간부들을 경기도 안산의 햄버거 가게로 불러 선관위 장악을 지시하며 “노태악이는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가져다 놓아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분다”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통령이 안전을 우려해 전화했더니 특수부대가 국회 유리창을 깨고 무기 사용과 단전을 검토한다. 대통령은 정치인 체포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데 방첩사 요원들은 국회의장과 거대 양당의 당대표를 체포하려 했다. 대통령은 장비와 시스템만 살펴보라 했는데 대법관이자 헌법기관의 수장인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을 야구방망이로 협박해 부정선거를 자백시킨다는 계획이 논의됐다. 이것이야말로 국가 비상사태다.
대통령의 지시가 현장에서 모조리 반대로 실행되는 상황에서 국정 운영은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의 그간 주장이 사실이라고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세뇌한 결과도 그 반대와 마찬가지다. 그에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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