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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우보세]고급주택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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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가장 비싼 공동주택은 공시가 164억원을 기록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PH129(더펜트하우스 청담, 407.71㎡)'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1억6000만원 오른 164억원이다. 한편 전국 가장 저렴한 공동주택은 강원 영월군 소재 다세대주택 '장릉레저타운' 전용면적 17.76㎡로 조사됐다. 가격은 273만원. 사진은 이날 PH129 모습. 2024.03.19. kkssmm99@newsis.com /사진=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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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대표 고가 아파트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은 고급주택이 아니다. 한남더힐·장학파르크한남 등 한남동 일대는 삼성·LG·GS·신세계·고려아연·아모레퍼시픽 등 재벌가 2·3세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해당 아파트도 고급주택이 아닌 일반주택이다. 장동건·고소영 부부 등 한 집 건너 유명인들이 사는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 청담'(PH129)도 그냥 일반주택일 뿐이다.

대개 100억~200억원을 훌쩍 넘지만, 대부분 고급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해당 아파트들은 현행 조세체계상 고급주택 기준을 아주 조금씩 벗어나게 설계됐다. 고급주택에만 부과되는 중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됐다. 초고가 주택이면서 고급주택은 아니게 설계된 조금 특별한 주택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1975년 도입된 지방세법상 고급주택 중과세 기준은 '면적'과 '가격'이다. 공동주택의 경우 공용면적을 제외한 주택 연면적 245㎡(복층형 274㎡), 시가표준액(공시가격) 9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이다. 고급주택으로 분류되면 일반세율(2.8~4%)에 8%를 추가한 취득 세율(10.8~12%)을 적용받는다.

건설사업자나 건축주들은 기준에 근소하게 미달하는 주택을 앞다퉈 지었다. 시행사 대신프라퍼티가 분양한 나인원한남은 펜트하우스 전용 244㎡ 124가구, 복층형 273㎡ 43가구로 기준 면적에 각각 1㎡씩 미달한다. 인근 한남더힐도 전용 244㎡ 가구가 많다. 청담동 PH129 복층형은 전용 273.96㎡로 기준보다 0.04㎡ 작다.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복층형(전용 273.92㎡)은 해당 기준보다 0.08㎡ 작다. 같은 지역 포제스한강은 단층형 가운데 면적이 가장 큰 가구가 244.99㎡로 기준을 0.01㎡ 차이로 비켜 갔다.

실제로 이 같은 '특별한 설계'는 제 기능을 톡톡히 했다. 최근 조세심판원은 거래가격이 100억 원 이상이고 가구별로 지정 주차장과 창고가 있는 고가 공동주택(펜트하우스 전용 244㎡ 124가구, 복층형 273㎡ 43가구)인 나인원한남을 지방세법상 고급주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나인원한남은 지난해 7월 전용면적 273㎡(1층)가 220억원에 거래됐다. 국내 아파트 매매 거래 사상 최고가였다. PH129나 한남더힐 등 다른 곳들도 같은 이유로 취득세 중과를 받지 않았다.

업계 안팎에서는 제도 시행 50년이 된 고급주택 과세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적 기준을 제외하고 가액 기준으로만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예 지방세법상 고급주택 항목을 없애고, 고가주택 과세구간을 세분화 방안도 거론된다. 이르면 올해 6월께 현실 상황을 반영해 고급주택 기준을 변경한 입법안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도적으로 1㎡ 줄인 면적은 최고급 주거단지를 표방하는 아파트의 이면이다. 누군가는 이를 효과가 좋은 절세 수단이라고 흡족해하는 반면 다른 이는 치밀한 '꼼수'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잘잘못을 따지듯 옳고 그름으로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백억원대 아파트는 고급주택인가, 고가주택인가. 고급을 뺀 자리가 구차함으로 채워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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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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