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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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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열린 제42회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유승민 전 IOC위원이 이기흥 현직 회장을 제치고 당선됐다. 이기흥 후보의 조직력과 유리하게 설계된 선거제도, 그리고 후보 단일화의 실패로 개표가 끝날 때까지도 체육계 내부에서는 유승민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절대 강자로 평가되던 현직 회장의 조직 장악력을 뚫고 40대의 선수 출신 언더독이 예상 외 승리를 거두는 마치 극적인 스포츠 게임의 결말과도 같은 감동적인 순간이 현실에서 펼쳐졌다. 이로써 2024년 하반기 내내 국민적 이슈였으나 정국 상황으로 인해 동력을 잃고 있던 체육계 개혁이 비로소 출발선에 서게 됐다.
이번 결과는 2016년부터 대한체육회를 이끌어온 이기흥 체제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 이기흥은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리며 정·관계를 넘나드는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체육계를 장악했다. 2021년 발족한 제3기 미래기획위원으로 위촉돼 참석했던 첫 회의의 인상은 재정, 법무, 행정 고위 관료 출신의 위원이 다수를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기흥 회장 임기 동안의 사무총장들도 스포츠와 딱히 접점이 없는 부처 출신의 고위 관료가 영입됐고, 이후 금융통화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으로 영전해 갔다. 이기흥은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운영 방식을 고수했고, 한국 체육계는 정치성과 배타성, 폐쇄성이 증대됐다. 구시대적 질서와 조직 문화로 인해 안세영 사건으로 상징되는 권력형 부조리에 대한 미온적 대처로 내부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파리 올림픽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및 정치권, 언론, 여론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비위 의혹도 불거졌다. 부정 채용 의혹과 대가성 인사, 후원 물품의 사적 유용 등 권력의 오남용을 의심케 할 정황들이 포착됐다. 2024년 11월 국무조정실 공직복무점검단이 경찰에 권력형 비위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직무정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기흥은 서울행정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3연임 출마를 위해 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의 판단을 받는 과정에서 셀프 임명 논란에 따른 공정성 시비도 일었다.
선거 당일까지도 이기흥의 승리가 당연시됐다. 역대 최다 6인 후보의 출마, ‘반(反)이기흥 후보’ 간 단일화의 불발, 그리고 그들 간 경쟁이 치열해져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현직의 낙승을 예상하게 했다. 40% 이상의 고정표와 8년간 다져온 조직력에 ‘어회흥(어차피 회장은 이기흥)’이라는 말이 체육계와 정부에 나돌았다. 총 2244명의 선거인단은 대한체육회 대의원, 회원종목단체 대표자, 시도체육회 대표자, 선수 및 지도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다. 8년 동안 각 지방 및 시도체육회에 대한 예산 배분권을 행사한 정치적 영향력이 막대한 현직 회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성이었다. 선거인단 구성의 절차적 문제, 선거 시간과 장소의 제한성, 개인정보 무단 활용 등의 문제 제기로 강신욱 후보에 의해 가처분 소송이 제기됐지만 기각됐다.
그러나 반전의 결과가 도출됐다. 체육계 내부에서 기존 체제에 대한 피로감과 각종 감사, 수사 등에서 드러난 정황들에 대한 반감으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표심이 결집됐다. 이기흥의 ‘앙시앙 레짐’은 20세기 국가주의에 입각하여 국위 선양에 소모되는 체육이 아닌 ‘시대정신’인 21세기 선진-선도국가의 스포츠를 이끌어야 하는 리더로서 한계를 드러냈고, 그것이 체육계와 사회 일반의 변화의 요구로 나타났다. 유승민의 IOC 선수위원으로서 쌓은 경험과 대한탁구회장으로서 보여준 성과 역시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다.
이번 선거의 또 하나의 의미는 그 과정이 어느 때보다도 치열했던 선거 과정에서 여러 갈등 양상으로 파행의 우려가 있었으나 규정과 절차 안에서 누구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지 않고 민주적으로 마무리됐고, 결과에 대해 깨끗한 승복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시스템에 대한 부정, 불신과 그에 따른 사회 전반의 갈등이 무질서하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시국에서 스포츠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치열한 경쟁이 있더라도 스포츠맨십과 민주적 절차에 입각한 과정과 마무리가 지켜진다면 사회적 혼란 없이 리더십 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유승민은 절차적, 성과적,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한 기대받는 리더가 됐다. 권위 없는 리더십은 분열과 갈등에 의한 소모적 양상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승리에 기반한 리더십 교체로 인해 체육계는 불필요한 역량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지지받는 권위는 도전 과제에 대하여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리더 개인과 한국 체육계의 본질적 변화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유승민 회장에게 주어진 숙제는 대한체육회를 공정하고 투명한 조직으로 운영하고, 변혁에 대한 기대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장기 집권과 구태적 접근으로 인한 피로감과 퇴행성의 해소는 우선 과제다. 이기흥이 낙승을 하리라 예상되었던 것은 체육계의 권위적, 폐쇄적 문화와 상명하복 소통 방식이다. 과거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자유로운 문화에서 수평적인 소통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스포츠의 ‘시대정신’은 엘리트, 생활체육과 유소년 스포츠의 균형감 있는 발전, 그리고 산업적 성장을 통한 자생력 확보를 요구한다. 엘리트 선수 출신으로서 자칫 있을 수 있는 시야와 경험의 한계를 외연 확대와 인재 확보로 극복하여 ‘선진형 K스포츠 모델’의 토대를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출발점에 선 유승민 회장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우리 사회와 체육계는 미래지향적인 선도적인 혁신을 기대하여 새로운 리더십에 권위를 부여했다. 그가 이끌어갈 대한민국 스포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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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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