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가수협회장으로 영결식
“따뜻한 미소·노래 영영 못 잊어”
유족·동료 등 70여명 눈물 작별
태진아 “잘가 영원한 내 라이벌”
수많은 히트곡과 구수한 입담으로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태진아와 설운도 등 후배들이 불러준 그의 대표곡 ‘해뜰날’을 들으며 하늘로 떠났다. 9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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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송대관의 발인식이 엄수된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태진아(왼쪽)와 설운도 등 후배 가수들이 슬픈 표정으로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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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조사를 낭독하다 고인의 히트곡 ‘네 박자’의 제목을 함께 정할 당시 일화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이 회장은 “‘네 박자’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특히 정이 가고 제목이 노래에 한몫했다고 생각해 행복했다”며 “우리 후배들은 선배님의 유머 있는 모습과 따뜻한 미소, 주옥같은 노래들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 생전에 친형제처럼 지낸 후배 가수 태진아는 추도사에서 “치매를 앓는 제 아내가 대관이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며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송대관은 지난 7일 79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최근 칸디다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년 전 암 투병 이후 여러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최근까지 KBS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등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송대관은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송영근 선생이 할아버지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그는 무명 가수 생활을 하다 1975년 ‘해뜰날’이 대히트하면서 MBC 가수왕에 오르는 등 인기를 누렸다. 10년 가까이 미국 이민을 떠났다가 1980년대 후반 귀국한 뒤에도 ‘차표 한 장’, ‘네 박자’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의 노래는 경제발전 시기에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며 희망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2010년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을 맡아 가수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서기도 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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