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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가수 송대관의 영결식에서 태진아가 추도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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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하고 해뜰날 돌아왔단다”
‘해뜰날’, ‘네박자’ 등 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수 송대관이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대표곡 ‘해뜰날’을 들으며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향년 78.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송대관의 영결식이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지난 7일 고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동료 가수 태진아는 추도사를 낭독해 “형님은 항상 저에게 멘토였다. ‘형 가는 길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길래 정말 따라갔다”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 가서 사시면 제가 방송하는 것도 큰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눈물을 삼켰다. 송대관, 지난해 세상을 떠난 현철, 태진아와 함께 트로트 4대천왕으로 불리던 설운도는 이날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 형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조사를 낭독한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네박자’의 제목을 고인과 함께 결정했던 일화를 떠올리며 “‘네박자’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노래에 한몫했다고 생각해 행복했다. 선배님의 유머 있는 모습과 따뜻한 미소와 주옥같은 노래들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송대관 소속사 스타라인업 엔터테인먼트는 고인의 별세 소식을 누리집에서 밝혔다. 고인은 몇 년 전 담도암 투병을 했지만 몸이 쇠약해진 가운데에도 티브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지난 달에는 KBS ‘전국노래자랑-서울 성동구 편’에도 출연했기에 고인의 부음 소식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가요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6일 몸의 이상을 호소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중이던 다음 날 오전 10시께 심정지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46년 전북 정읍 출신인 고인은 1965년 전주 영생고 졸업 뒤 상경해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으나 당대의 스타 남진, 나훈아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무명 생활을 이어가다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라는 가사는 많은 국민에게 위로를 줬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엠비시(MBC) 가수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0년 돌연 미국에 이민을 떠나면서 활동을 중단한 고인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귀국해 ‘혼자랍니다’와 ‘정 때문에’를 발표하며 가수 생활을 재개했다. 이 뒤 ‘차표 한장’ ‘네박자’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국민 가수로 사랑받았다. 2008년에는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에 취임하며 동료와 후배 음악인들의 권익 신장에 앞장섰다.
고인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송영근 선생의 손자인 것이 2012년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8월 MBC 라디오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에 나와 “할아버지께서 (전북) 군산의 형무소에 계시면서 너무나 많은 고문을 당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며 “손자 되는 입장에서 지금은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지는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 마련됐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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