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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수)

송가 부를 사람마저 없는 풍경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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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강원도 유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상영관 모습. 강릉씨네마떼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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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영화 예매 앱을 이렇게 자주 들락거린 건 처음이었다. 작년 연말부터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의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강원도 전체에서 원주와 강릉, 단 두곳에서만 상영한다는 소식에 고민을 거듭했다. 강릉까지 직접 운전을 해서 보러 갈지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보고 올지 고민하는 동안 종영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강릉 극장에서도 한두개 관만 상영하고, 시간대가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마치 간을 보듯 하루씩 상영일을 늘려가는 상황이라 언제 상영이 종료될지 몰라 매일 앱을 들어가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 달여를 별러 강릉 시내 멀티플렉스를 찾았다. 그런데 식당가에서 놀랐다. 토요일 저녁 7시에 문을 연 곳이 프랜차이즈 일식당과 카페밖에 없었다. 대부분 영업을 중단했고 많은 곳이 임대 광고 중이거나 비어 있었다. 당연히 식당을 찾은 손님도 영화를 보러 온 관객도 적었다. 6년 전 처음 양양으로 이주한 뒤 인근 속초의 극장을 찾았을 때 처음 경험하고 놀랐던 을씨년스러움을 그래도 강원도에서 손꼽히는 큰 지역의 극장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 이후로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영향이 이렇게까지 컸던가.



대도시가 아닌 작은 지역에서 살기를 결심할 때 일자리 못지않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이른바 인프라라고 하는 것이다. 교통이나 행정, 교육 서비스와 관련한 것은 물론이고 문화생활도 해당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콘텐츠 헤비 유저였고 대중문화 기자로 일한 경력까지 더해 극장을 자주 찾는 편이었던 터라 문화의 불모지에서 사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이주 초반에는 자영업자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극장을 찾을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다행히 읍내에 새로 개관한 작은 영화관이 있었다. 스크린 크기도 전체 규모도 상영관 수도 ‘작은’ 곳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력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작은 영화관에 큰 불만이 없지만 ‘더 폴’ 같은 아트하우스 영화까지 이 작은 마을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현실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강릉까지 가면서도 오랜만에 멀티플렉스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겠구나 기대도 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광경은 데이트라는 단어를 꺼내기 어려운 한산함이었다. 요즘 젊은이는 영화관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티티(OTT)에 비해 극장이 지나치게 비싸서, 그 값을 내고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여기에 더해 지역의 젊은이는 영화를 보러 와서 밥 먹고 차 마시고 대화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라도 극장을 찾지 않을 듯했다.



지역의 문화 인프라는 나날이 낡아간다. 강릉시가 60년 역사를 이어온 지역 유일 독립영화관인 신영극장과 강원도 최초 독립영화제인 정동진독립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해 지역에서 여러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2022년에는 강릉국제영화제가 4년 만에 폐지되기도 했다. 공공의 지원을 받는 극장도 민간이 운영하는 극장도 결국 세금이든 푯값이든 돈 낼 사람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낡아가거나 사라진다.



‘더 폴’의 상영관 안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 관람객이 10명이 안 되어서 극장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미친 사랑을 절절하게 담아낸 작품을 보고 나니 휑한 극장 로비를 나서는 마음이 더 추웠다. 극장이 사라진다고 영화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소년, 청소년이 공동의 장소에서 함께 숨죽이거나 탄식하며 영화를 보는 체험을 시작으로 쇼핑-식사-영화로 이어지는 멀티플렉스 나들이 경험을 아예 해보지 못하고 ‘영화=오티티’로만 인식하게 되는 건 역시 아쉽다. 지역에서는 애초 척박했던 문화적 토양과 감수성이 너무 빠르게 낡고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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