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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쇼트트랙 한-중 천재, 오늘 1000m 격돌…누구라도 금 따면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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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쇼트트랙 대표팀 박지원이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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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두 친구는 서로의 주종목에서 자신이 절대 강자임을 확인했다. 장거리 1500m에서는 박지원, 단거리 500m에서는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2025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포디움 정상에 섰다. 500m에 필요한 타고난 순발력과 1500m의 전제 조건인 체력을 모두 겸비해야 하는 1000m를 놓고 두 선수는 9일 다시 격돌한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박지원의 재능은 영하 20도의 하얼빈에서 만개하고 있다. 연이은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으로 올림픽 무대에 한 번도 올라서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간의 재능을 한풀이하듯 쏟아내고 있다. 박지원은 현재 혼성계주, 1500m에서 금메달을, 500m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그간 1500m에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급 기량을 보여줬지만, 500m에서는 부진했다. 8일 모든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사실 놀라운 일”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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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대표팀 박지원(가운데)이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500m 시상대를 내려가며 은메달을 획득한 중국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을 격려하고 있다. 오른쪽은 동메달을 차지한 장성우. 하얼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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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개의 금메달로 군면제까지 덤으로 얻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은 경기를 치를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여유가 없다. “마음속 주종목” 1000m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1000m는 500m와 1500m의 장점을 모두 갖춘 자가 지배하는 종목이다. 단거리에서 요구하는 타고난 신체 조건에 장거리를 버틸 체력까지 받쳐줘야 한다. 개인전 중 가장 다이나믹하고 변수가 많다. 박지원은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 한겨레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모든 분이 1500m가 제 주종목이라고 말해서 약간 마음이 아프다. 아픈 만큼 1000m에서 인상 깊은 퍼포먼스,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1000m를 굉장히 좋아한다. 마음속 주종목은 1000m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미 2관왕을 달성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1000m에서 우승해 3관왕을 달성하려면 중국의 간판스타 린샤오쥔을 넘어야 한다. 린샤오쥔은 중국으로 귀화한 뒤 근육량을 늘리고 체격을 키워 단거리에 집중해왔는데, 이번 대회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장거리에서도 저력을 보여줬다. 그는 박지원과 맞붙은 결승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월을 시도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500m에서는 박지원을 누르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중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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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팀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가운데)이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은메달을 획득한 박지원(왼쪽), 동메달을 차지한 장성우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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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선수 시절 두 사람이 걸어간 길은 조금 달랐다. 임효준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스케이트를 탔다. 부상이 잦고 ‘잘 넘어진다’는 평가가 더러 있었지만, 한국체육대학교로 진학해 전형적인 쇼트트랙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대학생 때 이미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 출전해 모든 선수의 꿈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지원은 “효준이는 친구의 입장에서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잘 타는 선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선수를 이기면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항상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년 때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지원은 단국대를 졸업하고 실업팀에서 활동했다. 어릴 때 린샤오쥔과 국내 대회에서 자주 1위를 놓고 다퉜지만, 유독 올림픽을 겨냥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2018평창겨울올림픽에서는 린샤오쥔이, 2022베이징겨울올림픽에서는 황대헌이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도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박지원은 “2015년 첫 국가대표가 됐을 때 스스로 굉장히 스케이트를 잘 탄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초보였다. 평창올림픽 끝난 다음부터 성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1000m를 꾸준히 탔다”고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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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팀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이 끝난 뒤 박지원, 장성우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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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성기가 꺾이는 시점인 20대 중반까지 피나는 노력을 멈추지 않은 박지원은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2022∼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세계 순위 1위를 거머쥐고, 다음 시즌에도 정상을 유지해 2년 연속 ‘크리스털 글로브’ 트로피를 수상했다. 그리고 생애 첫 국제종합대회인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에서 ‘메달 제조기’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함께 태극 마크를 달고 뛰진 못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마침내 만난 두 선수. 박지원은 기자회견에서 ‘500m 린샤오쥔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가’라는 중국 취재진의 질문에 “서로 경기를 하는 것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그저 힘내자고 말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500m가 끝난 뒤 엎드려 울먹이는 린샤오쥔의 등을 두드렸던 그는 “(린샤오쥔이) 최대한의 노력을 해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충분한 축하를 서로 나눴다”고도 했다.



대표팀의 마지막 개인전인 1000m에 중국과 한국 쇼트트랙 팬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그가 잘 타는 선수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프로의 마음가짐으로 경기하려고 한다. 경기장 안에서는 경쟁자이지만, 밖에서 친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경기씩 나눠 가진 노력형 천재와 타고난 천재. 1000m에서는 누가 웃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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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겨울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1500m 준결승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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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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