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같은 천재는 보호해야 합니다. 그의 로켓을 보세요. 중국과 러시아엔 이런 기술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펜실베이니아로 갔습니다. 한 달 넘게 직접 선거운동을 해줬습니다. 일론은 인기가 많잖아요?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일론,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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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5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공동 유세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머스크. 버틀러=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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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단순히 막대한 선거 자금을 대준 기부자가 아니다. (머스크는 이번 선거에 총 2억2800만 달러(약 3300억 원)를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끼기에 머스크는 최대 승부처로 꼽힌 경합지 펜실베이니아주의 승리를 가져다준 귀인이다. 머스크 측 자료와 외신 보도를 통해 그가 벌인 놀라운 선거운동을 살펴봤다.
● “광고 대신 발로 뛰자”
지난해 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컸던 머스크는 공화당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아메리카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을 가동했다. 미 연방선거위원회(FEC) 자료에 따르면 정확한 출범 시기는 지난해 5월이다. ‘트럼프 공개 지지’를 망설이던 머스크가 주변 억만장자들에게 물밑 지원을 적극 설득하던 시기와 겹친다.
*트럼프-머스크 브로맨스의 서막은 트럼피디아 6화에서 살펴봤다.
미국 고유의 정치 제도인 슈퍼팩은 미국 선거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배경으로 꼽힌다. 후보나 정당에 직접 기부하게 되면 상한이 정해져 있지만, 슈퍼팩을 통하면 무제한으로 후원할 수 있다. 다만 모금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머스크는 선거운동 전략을 직접 짰다. 통상 미국 선거에서는 TV와 옥외 광고의 집행에 거액을 쏟아붓는데 머스크는 이 방식의 효과성에 대한 불신이 컸다고 한다.
그가 판단하기에 핵심은 방문 유세와 사전투표였다. 한국에 화장품 ‘방문판매’가 있다면 영미권에는 ‘방문 유세(canvassing)’가 있다. 후보나 자원봉사자, 혹은 선거 캠프, 슈퍼팩 등에 고용된 직원이 한집 한집 다니며 투표를 독려하는 활동을 뜻한다. 방문 유세는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선거 홍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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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의 주도 해리스버그에서 개최한 타운홀미팅에서 사전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머스크. 해리스버그=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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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여섯 곳의 경합주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투표 참여율이 낮은 유권자 80만 명을 핵심 타깃으로 삼았다. 거금을 투입해 방문 유세 직원을 고용했고, 유권자에게 ‘꼭 사전투표에 참여해달라’고 안내하기로 했다.
그러나 야심찬 계획과 달리 지난해 8월 시작된 방문 유세는 엉망으로 흘러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업무 성과를 허위로 보고하는 직원이 너무 많았다. 단말기에 방문 유세를 실시했다고 입력했으나 해당 직원의 실제 위치가 인근 식당이나 자택인 경우도 빈번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의 돈을 보고 부실한 업체들이 꼬였고, 조급해진 머스크는 계속해서 정치 자문과 방문 유세 업체를 갈아치웠다. 아메리카 슈퍼팩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 전면에 나선 머스크
이전까지 물밑에서 슈퍼팩을 운영하던 머스크는 결국 지난해 10월 전면에 나섰다.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X에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계정을 개설했다. 계정 소개에는 “튼튼한 국경, 합리적인 예산, 안전한 도시, 공정한 사법체계, 표현의 자유와 자기보호권을 추구하는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일론 머스크가 만든 슈퍼팩”이라고 적었다.
슈퍼팩 운영진도 최측근으로 싹 갈았다. 경합주 중에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주를 핵심축(린치핀)으로 여긴 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라델피아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주의 양대 도시로 꼽히는 피츠버그에 ‘워룸(상황실)’을 차렸다.
전례 없는 시도에도 나섰다. 선거 등록을 완료한 경합주 유권자가 “수정헌법 1, 2조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청원에 서명하면 47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것.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투표를 독려하고, 동시에 유권자 데이터도 수집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제47대 대통령 선거라는 점에서 착안해 47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청원이 호응을 얻자 펜실베이니아주 유권자에 한해 100달러로 지급액을 올렸다. 또 서명자를 대상으로 매일 한 명씩 100만 달러(약 14억 원)를 주는 일종의 ‘로또’ 이벤트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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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슈퍼팩이 청원 서명자를 대상으로 발송한 수표. 사진 출처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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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볼 인물은 스티브 데이비스다. 스페이스X부터 트위터(현 X)까지 머스크는 자신의 사업에 큰 문제가 생기면 데이비스를 찾았다. 그는 머스크가 신뢰하는 해결사로 알려졌다. 데이비스는 방문 유세 방식을 뜯어고쳤고 머스크는 더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NYT에 따르면 아메리카 슈퍼팩은 대선 날까지 방문 유세에 총 1억7500만 달러(약 2500억 원)를 써서 경합주 1100만 가구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 안 되면 되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머스크는 직접 펜실베이니아주로 갔다. 지난해 10월 5일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공동 유세에 나섰다. NYT에 따르면 머스크는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며 방문 유세를 다니겠다는 뜻을 밝혔을 정도로 열의가 넘쳤다고 한다.
지역 유권자들과의 접촉면도 대폭 늘렸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 17~20일 주말을 끼고 4개의 타운홀미팅을 개최했다. 타운홀미팅은 17세기 미국에서 유래한 정치 행사로, 정치인이 지역 주민과 만나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다. 지역 교회, 학교 강당 등에서 마이크를 잡은 머스크가 주민들과 몇 시간씩 대담을 진행하자 펜실베이니아주 여론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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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 교외 지역인 폴섬에서 타운홀미팅을 개최한 머스크. 폴섬=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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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민방은 머스크의 타운홀미팅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동안 TV를 틀기만 하면 머스크의 소식이 나왔다고 잡지 뉴요커가 전했다. 현지 정치 컨설턴트들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솔직히 너무 신기하지 않냐”며 “사람들이 동네에 머스크가 왔다는 사실 자체를 너무 좋아했다”고 전했다.
머스크가 자신의 사업 스타일을 그대로 정치판에 가져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답답하면 내가 직접 뛰는’ 인물이다. 2022년 트위터 인수 직후 비용절감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자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트위터 데이터센터를 직접 방문해 서버를 분해했다. 그리고 더 저렴한 데이터센터로 옮겼다. 2018년 테슬라가 모델3의 생산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공장에서 숙식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NYT는 “머스크가 등판한 배경엔 펜실베이니아주에 총력 대응(all-hands-on-deck)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전했다.
● “절대 쉬지 않겠다”
지난해 11월 6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론이라는 스타가 탄생했다”고 말하며 머스크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이미 스타인 머스크를 두고 스타가 ‘탄생했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새롭게 발견한 머스크의 ‘정치적 재능’에 대한 칭찬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트럼프가 그의 거침없는 일처리와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아 2기 핵심 국정과제로 꼽히는 정부 대개편을 맡긴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머스크는 선거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역사가 벤저민 소스키스는 “머스크 수준으로 직접 발로 뛴 고액 기부자는 미국 현대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NYT에 말했다. 트럼프 캠프 관계자는 “정치는 한 발짝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다. 그런데 일론은 아예 보폭이 다르다”며 그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냈다고 뉴요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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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5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공동 유세에서 포옹하는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머스크. 버틀러=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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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현재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미 행정부에 메스를 대고 있지만, 아메리카 슈퍼팩에도 손을 떼지 않고 있다. 상·하원 선거를 치르는 내년 중간선거를 위해 전력질주하겠다고 선언한 것.
“보통 슈퍼팩은 선거가 끝나면 휴지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메리카 슈퍼팩은 정반대로 하겠다. 우린 계속 갈아 넣을 것이다. 보궐선거와 중간선거를 향해 한순간도 쉬지 않겠다.”
연임이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간선거는 중대한 기점이다. 여기서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임기 후반 2년은 극심한 레임덕 상태에 빠질 우려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중간선거까지는 머스크가 꼭 필요할 전망이다. 현재 머스크는 보수 진영에서 재력과 스타성으로 대체 불가한 인물이다. 또 한 번 그에게 명운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
7화 요약: 머스크는 트럼프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최대 승부처로 꼽힌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한 달 넘게 직접 선거운동을 뛴 것. 머스크는 이번 대선이 시작일 뿐이라며, 내년 중간선거를 향해 쉬지 않고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8화 예고: 슈퍼팩에도, 정부효율부에도 머스크의 곁을 지키는 25년 지기들이 포진해 있다. 백악관 킹메이커로 도약한 실리콘밸리 총아들의 우정을 살펴봤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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