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 인터뷰
"우린 작은 일에 연연하며 살기 쉬워…예술은 인생의 의미 곱씹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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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작가 패트릭 브링리 |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성인이 된 후 요절하지 않는다면 50년, 60년 때로는 70년 정도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긴 시간을 견디려면 삶의 리듬을 잘 타야 한다. 어떨 때는 빨리, 어떨 때는 느리게, 그리고 때로는 중간 빠르기로.
국내에서만 25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삶의 속도는 지금 모데라토(중간 빠르기)다. 그는 난생처음 한국을 방문해 새로운 문화와 공기를 만끽하고 있다. 서울 북부를 병풍처럼 감싸는, 눈이 소복이 쌓인 북한산을 걷고, 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몇 년 전이라면 꿈꿔보지 못할 '새로운 인생'이다. 8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진행한 북토크를 앞두고 브링리를 만났다.
"서울은 흥미로운 곳이에요. 여러 겹의 시간 층이 도시 곳곳에 있어요. 전통과 현대의 모습을 다 지니고 있습니다. 뉴욕은 그런 층이 별로 없죠. 현대적이에요. 서울의 주말 시위 현장도 흥미로워요.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성조기를 들고 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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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는 브링리 |
지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지만, 한때 그의 삶은 프레스토(매우 빠르게)의 속도로 흘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22살에 미국 잡지 '뉴요커'에 입사했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 회사서 곧 인정받았다. 미디어에서만 보던 스티븐 킹 같은 거물 작가들과 백스테이지에서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시인 보들레르가 삶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괴물"이라고 한 '권태'를 그도 피할 순 없었다. 높은 마천루에 있는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날이 반복됐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의 삶에, 젊은 그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때쯤, 그의 우상이었던 형이 아팠다. "형이 입원한 병원과 오피스를 오가는 삶" 속에서 그는 점점 글쓰기의 의미를 잃어갔다. 그러다 형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회사 생활은 매일매일의 반복이었죠. 이메일을 열고, 답장을 써 보내고…. 그런 일상적인 날들이 계속됐어요. 4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형이 아팠어요. 형의 병실에 가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다시 사무실에 가서 일했죠. 형이 아픈 후부터는 모든 게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만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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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
그는 2008년 가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에 취업했다. 평소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봤고, 예술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박사학위 자격이 없으니 진입장벽이 낮은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경비원이었다.
"큐레이터를 하려면 예술사 석사는 물론 박사학위까지 있어야 했어요. 저는 예술을 사랑하지만, 학술적인 관심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즐기는 거죠. 주석을 달고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니라 예술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경비원은 큐레이터에 견줘 예술작품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움, 단순함, 솔직함 등 예술이 주는 미덕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경비원의 생은 어찌 보면 귀족 같은 삶이었다. 그는 박물관 개장 전 30분 전에 입실해 예술작품을 홀로 즐길 수 있었다. 개장 후에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는 "남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나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며 "그런 점에서 경비원의 삶은 귀족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경비를 서며, 삶의 리듬은 조금씩 안단테(느리게)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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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패트릭 브링리 |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며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인생에선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미술관 경비로 일하는 10년간, 자주 깨달음을 얻었다. 예술 작품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인생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이피파니'(epiphany·갑작스러운 깨달음)를 느끼는 순간은 무수히 많아요. 장례식만 해도 그렇죠. 장례식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하잘것없는 것에 전력투구하고, 작은 일에 연연하게 됩니다. 장례식 때 느꼈던 깨달음을 순식간에 잊어버리죠. 그런 깨달음을 간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품을 자주 보면서, 그런 깨달음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삶의 의미를 곱씹게 해요. 예술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매일매일을 깨달아가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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