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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6 (수)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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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먹는가. 궁극의 맛을 추구하는 요리사라면 한번쯤 고민해봄직한 질문입니다.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인 박찬일이 이 원초적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담아낸 ‘한끼’를 탐구합니다. 5주에 한번 독자님을 찾아갑니다.





한겨레

조선옥에서 갈비를 굽고 있는 박중규 주방장. 노중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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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님이 돌아가셨어요. 좋아하시던 분이라 알려드려요.”



아, 박중규 주방장이 돌아가셨구나. 충격이었다. 최근에도 직접 가게에 나와 고기도 굽고 일하시는 걸 보았는데. 1941년생, 올해 여든넷. 그가 없는 가게를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박중규 그는 서울 을지로에 있는 노포 식당 조선옥의 주방장이었다. 이제 돌아가셨으니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그는 한식업계의 속칭 살아 있는 신화였다. 여든넷까지 현역이었던 한 사내. 평생 갈비만 구운 요리사.



“내가 입사한 게 열다섯살이었어요. 어린이날이었어요. 그때 월급이 8천원인가 했고. 쉬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명절에만 쉬었고. 갈비는 화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은근히 구워야 속까지 익으니까. 처음엔 이공탄을 땠어요. 큰 구멍이 두개 나 있는 사각탄이었지. 나중에 십구공탄을 썼어요. 강한 화력이 필요한 중국집이나 탕을 크게 끓이는 식당은 사구공탄과 가루탄을 개서 쓰고.”



7년 전에 그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작년까지도 그는 가게에 다녔으니 거의 70년 가까이 되었다. 경이롭다. 그를 그렇게 오래 고용한 주인도, 가게를 바꾸지 않고 다닌 박 주방장도. 냉면과 육개장을 비롯한 온갖 요리를 파는 식당이지만 그는 말년까지도 갈비만은 직접 굽는 경우가 많았다. 갈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급 한식의 상징이다. 서울 종로와 중구 일대의 최고급 외식집은 갈빗집이었다. 1970년대에 강남에 생긴 초대형 ‘가든식’ 고급 외식집도 갈빗집이었던 걸 보면, 갈비야말로 한국인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외식이었다. 조선옥은 고급 갈빗집이라기보다 누구나 기꺼이 들러 갈비 몇대 뜯고 가는 대중식당이었다. 물론 옛날에 소갈비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는 했다.



한겨레

조선옥의 소갈비 구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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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주방장의 갈비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보통 현대의 갈비는 넓게 펴서 칼집을 넣고 달달하게 굽는다. 갈비에 다른 부위의 살을 붙여서 굽는 게 일반적이다(합법이다). 하지만 그는 딱 갈비에 붙은 살만 썼고, 얇게 펼치는 기술을 쓰지 않아서 두툼하고 투박했다. 그래서 낮고 은근한 연탄불에 오래 구워야 속까지 익고 맛이 났다.



그의 조리대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시멘트로 대를 만들고 안에 연탄을 넣어 땐다. 위에는 주물 구이대가 걸쳐 있다. 아주 원시적인 재래식 구이 틀이다. 거기서 그는 70년 가까이 갈비를 구웠다. 그의 하루를 좇아본 적이 있다. 새벽에 출근해서 연탄을 피운다. 고기를 구울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화력이 되려면 몇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소 갈비짝을 도끼와 골절기로 쳐서 자르고 칼로 고기를 편다. 양념을 얕게 한다.



“옛날 갈비는 양념을 아주 가볍게 해요. 요새는 맛이 복잡한 갈비가 유행하지만 말이오.”



그는 그렇게 가볍게 잰 갈비를 점심과 저녁에 구워 판다. 연탄불에 올린 갈비에 간장으로 만든 양념을 쓱쓱 뿌려가면서 촉촉하게 굽는다. 비장의 기술이라기보다는 매일 똑같이 힘들고 고단하고 지루한 일과를 계속하는 것, 그게 좋은 음식이라는 걸 그때 그를 보면서 깨달았다. 가게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면 그는 웃으면서 쑥스러워하셨다. 늙은 요리사가 뭐 대단하다고 이렇게 찾아오고 하느냐고 말이다.



그는 그렇게 70년 가까이 한 가게를 다닌 역사를 만들었다. 그의 의지도 중요했지만 요리사를 존중하고 종신토록 고용한 사장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로 남기고 싶다. 아, 조선옥 갈비 맛은 후배들에게 전수되어 여전하겠지만, 박중규란 사람이 없다는 게 내게는 현실감이 없는 얘기다. 부디 명복을 빈다. 갈비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한 사내의 짧은 행장기다.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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