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1 (금)

“출연 프로는 망하고 유튜브 해킹 당해”…나락갔던 이 남자, 떡상한 비결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진스님’ 윤성호 개그맨
책 ‘얼마나 잘되려고’ 출간

인기 식고 개그 프로 줄폐지
쉴때 배워둔 디제잉 선보여
‘힙한 불교’로 MZ들에 인기

“경전 같은 건 잘 모르지만
행복·고통 함께인 건 알아
성장통이라 여기며 버텼죠”


매일경제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이 최근 서울 중구 매일경제신문을 방문해 합장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승복을 입으면 스님이고, 벗으면 윤성호입니다.”

잿빛 장삼을 입은 그를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 난감해하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힙한 불교’ 열풍을 이끈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 부캐·48)이 최근 서울 중구 매일경제신문을 찾았다. MBN ‘개그공화국’ 출신이기도 한 그는 “10여 년 전에 매일같이 이곳을 왔다”며 “이태원에서 나고 자라 남산 자락이 친근하다”고 말했다. 그의 손엔 갓 세상에 나온 따끈한 책이 들려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집필한 에세이 ‘얼마나 잘되려고’(더모던 펴냄)다. 뉴진스님 캐릭터로 돌풍 같은 인기를 얻자마자 출판사 여기저기서 책을 내자는 제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처음엔 책을 쓰는 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해 고사했어요. 그런데 연락이 계속 오고 또 제 얘기를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낸 제 경험담을 제대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최고의 한 해는 최악의 시간을 버티고 버텨 얻어낸 벼락같은 선물이었다. 개그 프로가 잇달아 폐지되고 일거리가 없어진 데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공을 들였던 유튜브 계정이 해킹당하면서 멘탈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힘들 때마다 ‘얼마나 잘되려고 이러나’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던 그지만 골방 책상 아래 웅크리고 있을 정도로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한두 달 정도 무너져 있다가 2023년 5월에 연등회 행사가 들어와서 디제잉을 하게 됐어요. 관객 중 한 분이 ‘불교 또 나 빼놓고 재밌는 거 하네’라는 제목의 영상을 만든 것이 뉴진스님의 시작이었죠.”

2030들이 뉴진스님에 열광한 것은 ‘EDM(전자댄스음악) 디제잉하는 스님’이라는 파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통을 이겨내면 극락왕생’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메시지에 환호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내용의 가사를 쓰게 됐을까.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같은 경전은 보지 않아요. 제가 공부를 많이 하고 깊이 파고들면 안 됩니다. 일반 스님들이 할 게 없어요. 영역 침범이죠. 전 불자가 아는 정도만 알려고 합니다.”

매일경제

지난해 뉴진스님의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공연 현장.


깊은 공부는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경험으로 배운 것이 팔할이다. 그는 고통에 해박한 고승 못지않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고통과 행복은 한 묶음이에요. ‘No pain, no gain(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이라는 오래된 말처럼 아주 오랜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사회구조는 비슷하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도 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잖아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가 감히 꽃길을 걸으려고 하면 그건 너무 예의가 없는 것이죠. 인간은 항상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는 2005~2006년 개그콘서트 ‘빡구’ 캐릭터로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는 인기를 당연하게 생각했고, 모든 걸 잘난 맛에 살았죠.”

하지만 인기를 채 만끽하기도 전에 기나긴 내리막길이 찾아왔다. 위를 쳐다보면 자괴감이 들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그맨들이 1000명은 되는데 개그 프로를 하는 40~50명 안에 들었다고 생각하면 잘 살았던 건데, 왜 7명 나오는 ‘러닝맨’엔 못 들어갔지, ‘무한도전’이랄지 ‘라디오스타’랄지 예능인 대표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어둠의 긴 터널에 갇혔다고도 할 수 있지요.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었어요.”

그가 자신의 신세만 한탄하고 있었다면 모처럼 손에 잡은 기회도 모래알처럼 손아귀 틈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공법을 택했다. 2013~2014년엔 디제잉을 배웠다. MC도 하면서 디제이도 하기 위해서다. 2016~2018년엔 중국 현지에서 어학을 배웠다. 당시는 주변에서 중국어를 배워서 뭐에 쓰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중국어를 공부해둔 덕에 지난해 대만 공연에서 아이돌에 버금가는 응원을 받았다. 뉴진스님의 성공은 이처럼 20여 년의 개그맨 내공과 디제잉 능력, 콘텐츠와 어학 능력까지 갖췄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그는 “제가 중국어를 잘한 것은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라며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문법에 치중하고 정확하게 말하려다 보니 습득이 늦지만 전 정답에 맞게 살려고 하지 않았고, 틀리더라도 배우면 바로 써먹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뉴진스님 공연에 관중이 열광하고 있다.


그는 힘들수록 강박적으로 운동을 하고, 담배도 끊고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멀리했다.

“아침 6~7시에 눈을 뜨면 스스로가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고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누군가는 제가 게으름 피우는 것도 부지런한 것도 다 알겠지요. 만약 공부나 운동, 일찍 일어나기 등 스스로 고통을 주고 있으면 그분은 나를 그냥 지나치는데, 만약 편안하게 안주하고 있다면 고통을 내려줄 것 같다는 생각이지요.”

세상에 고통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성장에 필요한 고통은 스스로 주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발상이다.

지금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편안하게 누워 있지 말고, 고통스럽더라도 몸을 움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몸이 힘든 것이 머리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낫지요.”

그는 이른바 ‘칭감들’ 예찬론자다. ‘칭찬하고 감사하고 들어주자’의 줄임말이다. “이 3가지만 하면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겁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알면서도 지나치기 쉬운 것이죠.”

올해도 뉴진스님이 이끄는 ‘힙한 불교’ 열풍은 계속될까. 활동 계획을 묻자 “저의 뜻은 없는 것이다. 대중이 찾으면 계속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는 4월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불교박람회 참석도 조율 중이다. “뉴진스님의 인기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기가 떨어졌을 때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는 셈이지요. 올해는 사람들이 불러주면 강연도 할 생각입니다. 힘들 때 버티는 법, 멘탈 부여잡는 방법 등을 들으면 사람들이 희망을 갖지 않을까요.”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