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은 음식을 담는 실용적 도구이면서 동시에 진열장에 과시하듯 내어놓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도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신석기 시대 토기에조차 빗살무늬가 촘촘하게 정성껏 그어져 있는 것을 보면 인류는 애초에 그릇을 실용품으로만 쓸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이렇게 선사시대 토기부터 도기를 거쳐 자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간, 도자기는 당대의 삶과 사회, 문화와 예술 등 인류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었다.
신간 ‘그릇에 숨겨진 디자인’은 각 시대의 정치·사회·예술 사조·과학기술이 도자기 디자인에 미친 영향과 도자기 문양과 장식의 의미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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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공존/2만5000원 |
특히 동서양 문명의 교류가 도자기 디자인에 미친 영향과 자연에서 비롯된 보편적인 디자인에 주목한다. ‘도자기계의 명품’이자 덴마크를 대표하는 브랜드 ‘로열 코펜하겐’이 대표적이다. 로열 코펜하겐은 중국 청화백자를 기원으로 하면서 이를 유럽식으로 재해석했다. 단순화하고 고급화하는 과정을 거쳐 250년 동안 하나의 스타일로 진화해왔다. 책은 로열 코펜하겐과 동양 도자기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한편 도자기에 표시된 암호 같은 마크의 의미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 사람의 서명이 표시되는 방법 등도 함께 소개한다.
로열 코펜하겐 외에 마이센, 웨지우드, 노리타케, 아라비아, 에르메스, 아스티에 드 빌라트, 포르나세티 등 고가 ‘명품 그릇’의 역사와 특징도 잘 정리했다. 책에 담긴 200여개의 사진은 도자기에 담긴 역사적, 예술적 의미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돕는다. 한국도자기수리협회장인 저자는 국내 도자기 문화를 돌아보며 아쉬움도 표한다. 도자기 제조 역사가 1000년에 달하고 한때 세계 2위 도자기 생산국이었던 한국의 도자기는 천천히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게다가 ‘명품 브랜드’가 아닐 경우 도자기를 일회용 소모품처럼 쉽게 버리면서 도자기 수리 기술과 문화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중국과 일본이 도자기 수리 기술과 문화를 수백 년간 전수한 것과 대조된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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