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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관과 태진아(왼쪽부터). 사진=예찬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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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송대관이 갑작스럽게 하늘의 별이 됐다. 고인의 영원한 단짝으로 꼽히는 태진아와 더불어 동료 가수들은 슬픔에 잠기며 고인을 추모했다. 송대관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하며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렸던 현철·송대관·설운도·태진아 중 이제 설운도와 태진아만 남게 됐다.
송대관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면서도 절친한 사이인 태진아는 7일 “누가 뭐라고 해도 송대관 선배 하면 호남의 영웅적인 가수이자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별 중의 별이었다”며 “정말 마음이 아프다. 아침 밥상을 차려놨는데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다”고 침통한 마음을 연합뉴스에 전했다.
태진아는 자신의 대표곡 제목을 빗대 “송대관 선배는 내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 명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며 “선배는 (나와의 관계를) ‘실과 바늘’이라고 말할 정도로 30년 가까이 방송에서 나와 라이벌을 했다. 그러다 보니 라이벌 콘서트도 함께 열었고, CF도 함께 여러 편 찍었다”고 말했다.
설운도는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겨 놓은 노래는 영원히 모두의 가슴 속에 간직될 것”이라며 “현철 선배님을 떠나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비보를 듣게 돼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송대관 선배님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평소 지병도 있었다. 한창 활동할 나이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로트가 국민에게 사랑 받는 계기를 만든 분”이라며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긴 음악은 영원히 모두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쉴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효녀 가수’ 현숙도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저리다”며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나와 고향이 가깝기에 더욱 가수 생활을 하며 의지를 많이 한 사이다. 그래서 오늘 소식에 더욱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고 전했다. 송대관은 전북 정읍, 현숙은 전북 김제 출신이다.
아울러 “송대관 오빠는 평생 자기 주관이 뚜렷하게 당당하게 살았다. 자존심도 강했지만, 후배들을 잘 이끌어 줬다”며 “내가 (송대관) 오빠를 만날 때마다 항상 내 등을 두드려주며 ‘열심히 해라잉’ 하고 따뜻하게 말해주던 게 생각난다”고 떠올렸다.
이날 오전 송대관 측은 송대관이 전날부터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다가 오늘 새벽 컨디션 난조를 보여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오전 10시경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소속사와 유족은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46년 전북 정읍 출신인 고인은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무명생활을 이어가다가 송대관은 1975년 ‘해뜰 날’을 통해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네 박자’ ‘유행가’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故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한국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꼽히기도 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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