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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나 홀로 성장 미국, 가속화하는 탈동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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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5년 1월20일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세계적 탈동조화 현상이 가속할 것으로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2025년 1월8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찾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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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나 홀로 성장이 계속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눈부시다. 2024년 3분기 연율로 3.1% 성장했고 4분기도 동일한 성장이 전망된다. 예외적이다. 이런 상황은 감염병 대유행(팬데믹) 이후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반면, 다른 주요국은 성장 둔화와 위축을 겪고 있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는 완전히 탈동조화했는가? 과연 미국 우선주의는 성공한 것인가?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가?







세계화는 무너졌는가?







세계화가 질적인 동조화를 의미한다면 퇴조는 분명해 보인다. 세계는 이미 분열하고 있다.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세계를 감싼 냉기는 20세기 냉전 시대 못지않다. 신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25년 1월20일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가속할 수 있다.



다만, 국제 교역 규모 측면에서 본다면 여전히 세계화는 1870년 산업화 이래 최고 수준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하던 무역 개방도(Trade openness)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체 상태다. 하지만 급락은 하지 않고 있다. 무역 개방도란 글로벌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액과 수입액의 합의 비율이다. IMF는 2008년부터 2021년까지 무역 개방도가 정체된 기간을 ‘세계화 둔화’(Slowbalization)’라 명명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무역 개방도는 2008년 61%를 찍은 뒤 2020년 팬데믹 여파로 52%까지 하락한다. 하지만 빠르게 회복돼 2022년 63%로 정점에 달한다. 2023년 다시 59%로 하락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독자노선을 걷는다는 ‘우선주의’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국의 경제는 미국 경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미국의 실질 GDP와 다른 국가의 실질 GDP 간의 상관관계는 2000~2012년에 비해 외려 2013~2023년에 더 높아졌다. 2017년 트럼프 등장 이후 본격화한 미국 우선주의에도 불구하고 주요국 경제는 미국과 동조 흐름을 보였다. 특징적인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모든 국가와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미국의 투자자문사(RIA)가 계산한 주요 10개국(캐나다, 중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인도,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스페인)의 실질 GDP와 미국 실질 GDP의 상관관계는 0.886이었다. 통계적으로 동조 흐름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세계화는 질적인 측면에서는 후퇴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교역이란 측면에서는 적어도 2023년까지는 명확히 후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2023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와 주요 선진국 경제는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단기적인 불일치는 있었지만 거의 동조하는 흐름을 보였다.







동조화 무너진 2024년







2024년은 세계 경제의 동조화가 무너진 해였다. 미국 경제는 나 홀로 호황을 보인 반면, 다른 주요국 경제는 둔화, 위축 양상을 보였다. 영국의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2024년 2분기 0.4%, 3분기 0% 성장에 이어 4분기에도 0% 성장이 전망된다. 개인 소비 위축이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이다. 블룸버그 리포트를 보자. “영국 경제에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서비스업 부진이다. 산출량은 0.6% 감소했고, 술집과 식당의 매출은 2% 줄었다. 이는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맸음을 시사한다.” 소비자신뢰지수를 보면 팬데믹 이후 상승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이 소비 심리를 억누르고 있다. 최근에는 노동당 정부의 세금 인상 여파로 소비 심리는 더 위축되고 있다. 영국의 2023년 실질 GDP 성장률은 0.10%에 불과했다.



유럽은 어떤가? 유럽연합도 영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최강국 독일은 2023년 3분기부터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2024년 4분기 전망치도 –0.3%다. 유로 지역은 그나마 낫다고 하지만 2024년 내내 1% 이하 성장을 하고 있다. 전년 대비 2분기 0.5%, 3분기 0.9% 성장을 했고 4분기도 0.9% 성장에 머물 거라 전망된다.



한겨레

영국은 팬데믹 이후 개인 소비 위축이 지속되면서 성장률 둔화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의 한 식당이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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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탈동조화는 팬데믹에 대한 재정적 대응 차이에서 발생했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소비자들에게 직접 돈을 줬고 각종 재정적 혜택이 주어졌다.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인프라 건설과 제조업 부흥을 지원했다. 기업의 투자가 늘고 소비자 지출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반면, 유럽 국가들 역시 재정 투입은 했지만, 그 양은 미국과 비교해 매우 적었다. 재정지출 규모를 보면 영국과 독일은 5천억달러(약 737조4천억원), 프랑스는 2350억달러, 이탈리아는 2160억달러를 지출했다. 미국의 지출 규모는 5조달러 정도였다. 1930년대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에 지출한 금액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이다. 절대액도 크지만, 경제 규모로 산정한 상대적 지출액도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중국을 보자.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했다. 놀라운 성장률이었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성장률은 둔화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높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실질 GDP 성장률은 4.1%였다. 2024년과 2025년도 5% 미만으로 전망된다.



이런 놀라운 성장의 뒤에는 신용 팽창이 있었다. 중국의 거대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 불가능했다. 건설 및 관련 산업은 여전히 구조 조정 중이고 이에 따라 소비자 심리는 악화한 상태다. 노동력은 감소하고 고령화도 진행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중국에 의존했던 공급망 대체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수출과 주요 산업 부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폐쇄적이며 권위적인 체제하에 있다. 이는 창의력이 중요한 첨단 기술 산업 및 콘텐츠 산업 발전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중국이 과연 중진국 함정을 돌파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3조위안, 우리 돈으로 약 600조원 상당의 특별 국채를 발행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과거의 경기부양책에 비해 떨어질 확률이 높다. 기업과 지방정부의 높은 부채 수준 때문이다. 2025년 성장률 목표를 5%로 정했지만 그게 가능할지 현재로선 의문이다.







미국의 독주는 언제까지?







팬데믹 이후, 특히 2024년부터 미국과 다른 주요국의 성장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미국만 홀로 성장을 구가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팬데믹과 그 이후 이어진 경기부양책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힘을 거침없이 뽐내고 있다. 경기부양은 팬데믹 기간에는 비상 지급의 형태로 그 이후엔 IRA와 반도체법, 대출 면제프로그램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인프라 투자, 인공지능(AI) 투자를 포함한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재정지출은 한시적 경기부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성장이란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높은 이자율, 완강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자 지출, 민간 투자가 견고한 이유는 연방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지출 덕분이다. 노동시장 역시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건강하다. 게다가 트럼프 2기는 ‘자국 우선주의’를 더 견고하게 할 것이다. 2025년에도 빅테크가 주도하는 미국 기업의 천문학적인 투자는 계속될 것이고 세금 감면 정책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의 이익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지출 역시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 결과 2025년에도 미국의 성장은 강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곤경에 처해 있고 단기적으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미국과 세계의 탈동조화 혹은 유리현상은 계속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최소 몇 년은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 팬데믹 전까지 미국과 다른 국가 간의 불일치는 단기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수 있다. 타국을 압도하는 미국의 대규모 부양책은 계속될 것이고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세계 무역 질서의 변화는 더 가팔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의 투자 집중도 역시 향후 몇 년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역사적 정점에 와 있는 무역 개방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은 적다. 보호무역 흐름은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내수 기반이 충분한 미국은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 역풍은 나머지 국가들의 몫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어떨까? 적자 재정에 의지한 미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될수록 타국의 반발도 거세질 것이다. 미국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타국 간의 격차는 어느 정도 좁혀질 수 있다. 동조화가 발생하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은 아닐 것이다. 불신의 시대가 깊어지며 미국과 세계는 점점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안개 자욱한 세계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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