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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2차 대전 직후에 또다른 잔혹극이 시작됐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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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44년 2월 미국과 영국 공군이 독일 작센주 주도 드레스덴을 폭격해 폐허가 된 시가지를 시청 청사에 세워진 동상 옆에서 내려다본 모습. 동상의 작품명(Güte)은 독일어로 좋음, 선량함, 평화적 수단 등을 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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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7일,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6년에 걸친 전쟁은 유럽 땅에서만 최소 3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럽 전역은 폐허가 됐다. 마침내 파괴와 살육의 광기가 멈추고 전쟁은 끝났는가. 세계대전과 전후사의 권위자인 영국 역사 저널리스트 키스 로(55)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의 전투는 멎었지만, 또 다른 유형의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 유럽의 대부분 지역, 특히 동유럽에서 처절한 복수,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 끔찍한 내전으로 표출됐다.



키스 로의 ‘야만 대륙’(원제 Savage Continent, 2012)은 전쟁이 공식적으로는 종료된 1945년 5월부터 이후 2~3년 새 유럽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잔혹사’다. 이전에도 토니 주트의 ‘전후 유럽 1945~2005’(우리말 번역서는 2019년 출간, 열린책들)를 비롯한 역사서들이 나오긴 했지만, 너무 넓은 시간대를 다루고 있어 종전 직후의 사건들은 개략하는 데 그쳤다. 키스 로의 이번 저작은 “유럽 대부분 지역이 여전히 극도로 불안정하고 사소한 도발에도 폭력이 다시금 활활 타오를 수 있었던 시기”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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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대륙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잔혹사 키스 로 지음, 노만수 옮김, 글항아리,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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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유럽은 거의 모든 사회 인프라와 인간에 대한 믿음까지 송두리째 파괴된 암흑대륙이었다. 그런 유럽이 “수렁에서 벗어나 단기간에 풍요롭고 관대한 대륙으로” 탈바꿈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러시아 등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를 확립한 정치적 재생도 인상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쟁 종결은 억압과 폭력의 종식일 뿐 아니라 유럽 대륙 전체의 정신적·도덕적·경제적 재탄생을 의미한다.



저자는 그런 시각이 “전후사에 대한 장밋빛 견해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복수와 징벌의 후폭풍이 유럽을 휩쓸었고, 공동체와 국가들 사이에 깊은 앙금을 남겼으며, 민족 갈등이 악화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나치의 만행만큼이나 혐오스러운 잔혹 행위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1945~1947년 새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광범위하게 자행된 ‘인종 청소’로 다시 수천만 명이 살해되거나 추방됐다. 독일인 전쟁포로 학대,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법외 처벌, 독일 점령군과 사귄 ‘간통녀’들의 삭발과 수치스러운 조리돌림, 독일 등 패전국 여성 수백만 명에 대한 성폭행이 자행됐다. 독일군의 핏줄을 받은 혼외 아동들의 살해는 최악이었다. 지은이는 그런 야만의 실태와 전개 과정을 구체적 사례들과 통계 수치로 보여주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이런 사건들은 본질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발작이었고, 냉전의 시작과 밀접하게 맞물린”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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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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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파괴된 건물 폐허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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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4부로 짜였다. 먼저 ‘전쟁의 유산’(1부)으로 물리적 파괴, 사망자, 홀로코스트, 과부와 고아, 강제추방, 기아, 도덕적 타락의 실태를 정리했다. 2부 ‘복수’에선 나치·부역자·독일인 전쟁포로들에 대한 충격적인 보복 실태와 그 의미를 짚었다. 3부 ‘인종청소’는 전후에도 계속된 유대인 혐오와 폭력,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벌어진 소수민족 학살과 대규모 추방, 유고슬라비아에서 민족·종교·정치 갈등으로 벌어진 야만적 인종청소를 고발한다. 4부에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정치폭력, 그리스 내전, 발트 3국의 반소련 빨치산 저항운동의 전말 등을 살폈다.



지은이가 “전후기를 다룬 대다수 저술을 지배하는 ‘편협한 서구적 관점’에서 탈피”하려 애쓴 점이 돋보인다. 냉전 체제 반세기 동안 차단됐던 동유럽 쪽 역사 정보를 포함해 수많은 자료를 “엄밀하고도 세부적으로” 조사했다. 특히 “종종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모호하고 입증되지 않은 통계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전후기에 대한 여러 신화의 미궁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뚫어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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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0월, 그리스 최대 레지스탕스 조직이던 좌파 민족해방전선 소속 인민해방군(ELAS) 병사들의 모습. 그리스에선 1944년 10월 나치 독일 점령군의 철수 뒤 내전이 시작돼 종전 뒤인 1949년까지 이어졌는데, 인민해방군은 한때 내전의 최대 무장집단이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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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들여다본 2차 대전과 전후 폭력은 온갖 갈등과 모순이 응축됐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다면적 성격을 띠었다. 인종적 순수성(크로아티아), 민족해방(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 군주제 폐지 또는 왕정복고(그리스), 중세 봉건제의 족쇄 탈피(이탈리아) 등 명분도 다양했다. “가장 사악한 전투 중 일부는 세계대전을 기회로 오랫동안 쌓인 불만을 표출하려는 각국의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적’들에 대한 복수와 전적인 책임 전가는 ‘우리(민족)’의 단결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우리에게 잔혹행위를 저지른 대상이 오직 ‘그들’뿐이라면, 독일을 제외한 유럽의 모든 국가는 스스로 저지른 불의에 대한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독일에 대한 승리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는 각국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유럽 각국은 쓰라린 과거를 애써 기억하며 교훈을 찾고 추도와 화해, 사과와 용서에 힘을 쏟아왔다. 그런 까닭에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유럽을 다시 전쟁 상태로 되돌렸을 뿐 아니라, “러시아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소환”했기 때문이다. 푸틴 등 러시아의 전쟁 기획자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파시스트’, ‘반데리스트(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자 반데라의 이념을 좇는 세력)’라고 불렀는데, 이는 1940년대 이후 지워진 정치적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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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 내전(1991~1999)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국경 마을 파괴된 크로아티아인의 집에 세르비아 민족주의 상징인 세르비아 십자 문양과 글귀가 낙서돼 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 집단이 한 국가에서 공존하면서 벌어진 유혈극은 20세기 전반 양차 세계대전이 남긴 불씨에서 비롯했다.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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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직후 유럽을 할퀸 증오와 폭력, 새로운 분열은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졌다. 지은이는 중국의 국공 내전과 분단, 한반도의 분단과 내전이 남긴 불씨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현실을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 환기한다. “수십 년 동안 동아시아는 유럽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점차 평화롭고 번영을 이루게 됐지만(…) 전쟁과 그 여파에 대한 기억은 수면 아래 깊이 가라앉은 적이 없으며, 역사적인 원한 또한 양 대륙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은이는 오늘날 러시아와 서방의 신냉전 와중에 미-중 갈등이 고조되며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긴장이 나타난 현상에 주목했다. “아시아의 보통 사람들과 정치인들이 유럽의 성공에서뿐 아니라 실수에서도 배울 수 있기를” 바라서다. “전쟁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경솔하게 전쟁을 지지하지 말라’는 경고의 역할”(한국어판 서문)을 할 수 있기를.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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