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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기자의 시각] 세종시, 누적되는 경쟁력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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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충북 청주 KTX오송역 승강장에서 탑승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2018.9.17/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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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취재 담당이라 종종 세종시에 간다. 2016년 처음 갔을 때는 아예 숙소를 차려놓고 주재원 생활을 했다. 그때와 지금 세종시는 전혀 다르다. 도시 곳곳 넘쳤던 공터에는 초고층 아파트와 상가가 가득 들어섰고, 하천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이젠 정말 그럴듯한 신도시가 됐다.

그런데 갈 때마다 ‘고립된 섬’ 같다는 느낌은 변하지 않는다. 세종시에 처음 가 봤던 2016년과 9년이 지난 2025년 현재나 똑같다. 세종시 관문 역할을 하는 오송역의 황당한 위치 때문이다. 정부 부처 세종시 이전 시작이 2012년 9월이고, 수많은 사람이 비판했지만,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없다.

지도를 보면 고속철도 선로는 마치 세종시를 피해 가듯 기형적으로 휘어 있다. 오송역은 정부 청사까지 무려 19km나 떨어져 있다. KTX로 서울에서 오송까지 40~50분 만에 주파해도, 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30~40분 걸려 세종시까지 가야 한다. 열차와 버스 대기 시간 등을 더하면 서울서 세종까지 편도 2시간이 우습다. 왕복 4시간이 넘는다.

주기적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기자의 푸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기자가 아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관료들이 문제다. 부처마다 차이야 있지만 세종청사 과장급 이상은 하루가 멀다고 세종과 서울을 오가고 있다. 세종에 살든, 서울에 살든 상관없다. 과장급 이상이 되면 싫더라도 서울~세종을 고단하게 오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책상은 세종청사에 있지만, 업무 협의를 위해 정부서울청사에도, 국회에도, 대통령실에도 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나야 하는 이해 당사자도 죄다 서울에 있다. 한 공무원은 “작년에 쓴 열차표 값이 500만원이 넘었다”고 했다. 아무리 관(官)의 힘이 약해졌다지만, 정부 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엘리트들이 하루 4시간 넘는 시간을 말 그대로 길에 ‘뿌리고’ 있다.

‘그들이 고생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공무원도 사람이니 체력의 한계가 있고, 길에서 쓴 만큼 정작 더 중요한 일에 시간·에너지를 쏟지 못하게 된다. 기차 자리에 끼어 앉아 휴대폰으로 보는 보고서가 머리에 온전하게 들어올 리 없다. 국·과장과 사무관들이 얼굴을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하던 문화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상사들이 세종 사무실을 비우는, 이른바 ‘무두절(無頭節)’만 늘어났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세종시의 취지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불편함을 안기는 오송역 위치가 세종시 때문에 결정된 것도 아니다. 오송역 위치는 세종시 계획 전에 정치적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오송역이 생긴 복잡한 과정과 별개로 수많은 관료가 길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공무원 개개인 삶에도 비극이지만,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비극이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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