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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틀어놓은 TV에서 원로연기자 이순재 씨가 수상 소감을 하고 있었다. 연말에 열려야 할 '2024 KBS연기대상'이 무안제주항공 사고 여파로 지난 11일 해를 넘겨 진행된 것이다. 90세의 탤런트 이순재 씨가 대상을 받았고, 그는 수상 소감을 아주 진솔하게 펼쳤다.
이순재 씨는 "60살 먹어도 잘하면 상을 주는 거다.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내게도 이런 날이 왔다. 이상은 내 개인의 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참 많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가운데, 마지막 수상 소감에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번쩍이며 깨닫는 것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지켜봐주신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도 생경하고 오랜만에 듣는 단어로 인해 불현 듯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다름 아닌 '신세(身世)'라는 단어 때문이다. 어느 순간 우리 삶속에서 사라져 버린 '신세'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는 시청자와 방송관계자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진심어린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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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거나 폐를 끼치는 일'을 신세라고 말한다. 이순재 씨가 신세를 많이 진 것이 아니라 그의 연기를 통해 우리의 삶이 좀 더 윤택해 질 수 있었으니 신세는 정작 우리 시청자가 더 진 것이 아닐까.
그랬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어렵고 힘들지만 서로에게 감사해하고 고마워했다. "신세를 많이 졌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만큼 참 서로에게 감사해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속에 신세는 없다. 나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고, 나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는 내 삶이 우선인 세상이다. 이는 내 존재가 우선이며 이기심에서 분출되는 불만, 불평, 원망의 총체적인 행동 결과를 말한다.
A골프장에서 주문한 메뉴가 잘못 나왔다며 큰 소리로 식당을 시끄럽게 뒤집어 놨던 골퍼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골프장에서도 유명한 '불만 대마왕' 회원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매사 불만과 언쟁 그리고 큰소리로 골프장 분위기를 흐렸다. 그러자 그 골프장도 이에 맞서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출입과 예약을 제지한다며 공표를 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 이전에 이런 방식이면 골프장과 회원의 나쁜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상호간에 "신세 많이 졌다"는 말로 오갔다면 어땠을까. 한솔오크밸리리조트의 故이인희 고문은 골프장 관련, 작은 건의나 불만사항이 올라오면 즉시 손 편지나 다양한 창구를 통해 피드백을 해주며 개선과 감사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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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한민국은 고도의 압축 성장과 선진사회 진입이 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공공성은 뒷전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상대의 가치와 그 배려를 몰랐다. 절대 지면 안 되고, 맞고 들어와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각박한 경쟁에 내몰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끝까지 나의 정당함만을 키워오다 보니 학교, 직장 그리고 골프장에서 조차도 상대에 대해 공격하기에 바빴다. 감사하다는 마음만큼 가장 아름다운 예의의 형태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또 감사함을 표현할 때 모든 문제는 풀리기 마련이다.
도고익안(道高益安), 세고익위(勢高益危)란 말이 있다. 도(道)란 높을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다는 말이다. 내가 잘나가고 탄탄대로를 걷고 있을 때 항상 상대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골프 라운드가 끝난 후 나의 잘못보다는 상대의 잘못을 먼저 지적하고 불평을 말한다. 이 역시 상대에 대한 고마움 그 '신세'란 말을 표현하지 않아서다. 이순재 씨의 수상 소감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감사'와 '배려'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잊혀진 '신세'라는 단어를 다시금 되 뇌이고 자주 표현하도록 노력하자.
일본 사람들은 12월 31일 그 해 마지막 날 "올해도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꼭 한다고 한다. 우리도 일상이나 골프장에서 18홀 라운드를 마치고 나서 "함께 해줘서 감사하고 오늘도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는 2025년이 되기를 바라본다.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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