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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8 (화)

트럼프 바라보는 韓 극우…미국 민주주의 후퇴와 ‘계엄 한국’ [美 주도 극우 포퓰리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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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지는 대통령 탄핵 정국은 탄탄한 줄로만 알았던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단번에 까발린 사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 이런 지도자를 지지하는 극우의 준동이 잠재워지지 않는 현실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허약한 민주주의 토대를 드러내고 만 한국의 비상 정국에 대해 해외에서는 미국에서의 민주주의 후퇴, 권위주의 부상 분위기를 연결짓는 흐름도 나타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으로 정점을 찍은 미국 민주주의 위기가 전세계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과정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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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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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우의 ‘믿는 구석’ 된 트럼프? 반복되는 비슷한 사건들

계엄·탄핵 정국에서 실제로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극우 세력이 보인 행태는 트럼프 발 미국 극우 포퓰리즘과 유사한 부분이 포착된다.

지난 19일 새벽 3시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일어난 ‘서부지법 폭동’에 세계는 2021년 1월6일 미국 의회 점거 폭동을 즉각 연상하며 경악했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패배에 불복한 지지자들이 결과를 뒤집겠다며 의사당을 불법 침입해 난동을 부렸던 사건이 이번에 한국에서는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분노한 지지자들의 폭동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 지지자 300여명은 이날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겠다며 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만 90명이었고, 과반이 20∼30대 청년이었으며 녹화된 현장 영상을 보면 무기를 들고 집기를 부수는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반공주의 교육을 받았던 노년층,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저항감으로 무장한 20∼30대 남성은 최근 수년간 우경화되며 한 데 묶여 오던 중 윤 대통령의 탄핵을 기점으로 더욱 밀착해 결합했다. 극우 연합이 된 이들은 태극기·성조기를 흔들고,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와 비슷한 빨간 모자를 쓰고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이라는 문구를 든다. 부정선거 결과를 도둑맞았다는 의미로, 대선 불복 주장을 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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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서부지법 폭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 발생했다. 이를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는 외신의 지적도 나온다. 미국 언론에서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은근히 트럼프 대통령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는 분석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할 것이라는 등 ‘희망회로’를 돌리는 분위기도 포착되고 있었다.

◆어딜 비교? 어림없는 기대…선 긋는 미국과 트럼프

부정선거 음모론, 두 번 다 기각되긴 했지만 탄핵을 경험한 점,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지지자들, 권위주의와 전통적 남성성 같은 힘에 기대려는 트럼프 지지층의 성향 등은 모두 한국 극우 연합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윤 대통령의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윤 대통령 구출’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바라본다. 이들 지지자가 실제로 “트럼프 취임 후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조작된 선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 윤 대통령이 (권한)을 빨리 되찾도록 도와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외신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토니 블링컨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 때도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인 한국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미국의 민주주의 후퇴 경향이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바 있다. 트럼프 취임을 앞두고 한국 극우 세력이 미국 새 행정부를 염두에 둔 도움 요청을 하는 것, 애초에 미국이 윤 대통령의 반민주적 성향을 꿰뚫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지적 등은 미국에도 뼈 아픈 내용일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당시 한·미 외교 수장은 즉답을 피한 채 “민주주의란 늘 도전받기 마련이며,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진짜 중요하다”는 식의 답을 내놨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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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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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우 연합에게는 실망스럽게도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 대세를 전환할 계기가 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외교가에서는 여러 나라의 내우외환을 다 겪어본 전력이 있는 미국이 굳이 내정 간섭 위험을 무릅쓰며 특정 진영에 힘을 실어 줄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쉽게 말해 ‘이기는 쪽과 상대한다’, ‘친미 정권이면 진영은 상관 없다’는 것이 본심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이나 권한대행 체제의 변화 속에도 일관되게 “한국의 민주적 절차를 지지한다”는 입장만 나온다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이런 기조에 변화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그저 2021년 미국 의회 난동 사건의 폭동 주범들을 사면시켰을 따름이고, 한국 상황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다가 농담조로 지나가듯 “내가 혼돈이라고? 한국을 봐라“라며 조롱하는 정도로 언급되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종일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호평과 북·미 대화를 암시하기에 바쁠뿐 수장 공백 상태인 한국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스트롱맨’인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국민적 지지 기반을 잃은 윤 대통령 및 그의 정권 사람들과 상대하지 않으려는 건 당연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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