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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흥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1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창문을 깨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유튜브 ‘락티브이(TV)’ 영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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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8일 오후 1시50분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 앞 인도에서 일단의 군중이 ‘윤석열! 윤석열!’을 연호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을 태운 호송차가 그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원에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그들은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흔들거나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었다. 집회 주도자의 선창에 맞춰 ‘윤석열을 석방하라’ ‘불법 영장, 체포 무효’ 등의 구호를 외쳤다. 손에는 주로 ‘위조 공문, 불법 체포’ ‘Stop the Steal’이라는 손팻말이 들려져 있었다. 가끔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이란 손팻말도 보였다.
주목을 끈 것은 그날 집회 참여자들의 표정과 분위기였다. 필자는 서부지법에서 공덕역 방향으로 약 20~30m 떨어진 곳에 서 있었는데, 공덕역에서 서부지법 쪽으로 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긴장된 표정으로 상당히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후 2시에 피의자 심문이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던 만큼 서둘러 서부지법 앞으로 가려던 것으로 보였다. 도로가에는 경찰 버스들이 차단막을 치고 있었고, 그 앞으론 정복 경찰들이 도열해 이들의 도로 진입을 막고 있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한 시민이 도로 쪽으로 가려다 막히자 경찰들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대통령을 불법 체포했는데 왜 우리가 법을 지켜!” 필자의 눈에는 경찰이 2중 3중으로 그냥 서서 도로 진입을 차단하고 있을 뿐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탄핵 찬성 집회는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의 현장 같던 분위기였다면 그 집회엔 불안과 분노 같은 게 팽배했다. 판사가 영장을 기각해주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었다. 주로 노인층이 많았고, 20~30대 젊은층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히 반헌법적·불법적이었고, 몇차례의 소환 불응에 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했는데 이들은 어떤 연유로 이곳에 모여들어 ‘불법 영장, 체포 무효’를 외치는 걸까. 또 전광훈 목사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도 법원 판결로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는데도 믿지 않으려는 걸까. 누군가에 의해 선동당하는 군중이란 게 바로 모습이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필자는 다른 일정이 있어 현장을 떠났다.
필자가 그곳에 있을 때만 해도 집회는 서부지법 양편의 인도에서만 이뤄졌다. 다음날 새벽 서부지법이 군중에게 처음 뚫렸던 후문 쪽에는 시위대가 별로 없었다. 참석 인원은 대략 2천여명으로 추정됐다. 나중에 극우 유튜버들의 생중계 동영상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해보니, 시위대는 오후 3~4시께 급격히 불어났다. 전광훈이 주도했던 광화문 집회 인원들이 서부지법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 시위대는 서부지법 건물을 빙 둘러싸고 구호를 외쳤다. 다음날 새벽 2시59분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군중 사이에선 격한 분노의 감정들이 쏟아졌다. 일부 시민은 판사에게 쌍욕을 해대며 ‘밤길 조심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후문 쪽에선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다 결국 경찰 방어선이 무너졌다. 한 청년은 수신호로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동영상을 확인해보면, 경찰은 비폭력을 유지하며 시위대의 진입을 막고자 노력했다.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경찰은 시위대에 애원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경찰이 일부러 길을 터줬다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없는 것으로 보인다. 서부지법 정문이 뚫린 것도, 시위대가 정문 옆의 창문을 깨고 난입한 뒤 건물 안쪽에서 경찰을 협공하자 물러난 것이었다.
법원 난입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일부가 7층 판사실까지 올라가 특정 판사를 찾는 모습은 정말 섬뜩했다. 법정과 판사실 문을 하나씩 발로 차며 “어딨어?”라고 소리지르며 수색까지 했다. 분노와 증오를 넘어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당시 법원 내부에 피신했던 직원은 “눈빛들이 너무 정상이 아니어서 상대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무법천지처럼 돌아다니는 시위대가 너무 처참해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전국공무원노조를 통해 한겨레에 전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21세기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필자가 동영상을 찾아보며 그날 사건을 굳이 복기한 것도 그 연유를 알고 싶어서다. 동영상에 비친 일단의 군중은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그날 서부지법은 군중의 광기가 표출된 일대 사건임이 분명하다. 기자 생활 30년 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난동을 부리는 이런 섬뜩한 군중을 접하기는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군중의 분노와 증오심을 만들어내고, 종국에는 이런 폭동까지 유발한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군중의 분노와 증오는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구호와 주장들이 상식적 수준에서 바라볼 때 너무나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이 이를 믿게 된 것은 누군가 지속적으로 거짓 정보를 참인 것처럼 선전해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거짓된 정보라도 끊임없이 머릿속에 주입하고, 특히 사회적 공인이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면 거짓 정보도 참처럼 보이게 된다. 공인의 ‘인정’을 계기로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부정선거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광훈 같은 극우 정치꾼들과 극우 유튜버들이 2020년 4월 총선 때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나 주변부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변방에서 떠돌던 음모론이 정치 공론장으로 격이 갑자기 올라간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관의 체포·구속 문제도 유사하다. 윤 대통령과 변호인들이 법적 절차마다 불법 딱지를 붙이며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국민의힘 주류가 동조하면서 이들의 주장이 마치 다퉈볼 만한 사안이거나 심지어는 진실인 것처럼 둔갑한 것이다.
군중의 분노와 증오는 누군가에 의해 유도된 것임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정당한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며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영상으로 극렬 지지층을 자극했다. 경호처의 호위무사들은 위력을 과시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떼로 몰려와 사수대를 자임했다. 마치 윤 대통령의 불응과 거부가 정당한 행동인 양 비쳐지도록 했다. 엄동설한에 관저를 지켜온 극렬 지지층은 결국 그가 체포되자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석동현 변호사 같은 이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 같은 말까지 공공연히 꺼냈다. 특히 폭동 사태가 발생한 18일은 오전부터 상황이 극적으로 돌아갔다. 법 집행을 무시해오던 윤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에 직접 출석하겠다고 갑자기 발표했다. 그의 출석 소식이 알려진 것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불과 3시간 전인 오전 10시55분께였다. 극렬 지지층은 일말의 기대를 안고 서부지법으로 급하게 오게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40분간이나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극렬 지지층은 밤늦도록 서부지법을 에워싸고 구호를 외치거나 북을 치며 판사를 압박했다.
군중이 흥분에 휩싸이면 집단적인 군중심리에 빠져들어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군중 속 개인은 난폭해지기 쉽다. 다수가 함께 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익명의 뒤에 숨을 수 있어 무책임해진다. 그날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지면서 이성을 잃은 이들이 속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부 극단주의 성향의 개인들이 선두에서 손짓을 하며 조직적으로 유도한 정황도 보인다. 청년층은 이런 유혹에 더 취약해 파괴적 행동에 참여할 위험이 있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날의 폭동은 유도되고 만들어진 정황이 상당하다. 윤 대통령도 폭력은 안된다고 주장하니 그가 그날 밤 폭동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시민들이 이런 군중으로 돌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23일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 변론에 출석한 윤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그가 의도한 술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날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직접 증인신문을 하며 자신의 ‘행동대장’ 김용현과 말 맞추기에 나섰다. 질문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먼저 얘기하고 김용현의 대답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썼다. 김용현에게 증언을 이렇게 하라는 신호를 준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잡범이 아니라 통 큰 ‘대도’임이 분명하다. 공개 법정에서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 맞추기를 시도하니 말이다. 윤 대통령 쪽은 군 사령관들의 증언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사실마저도 뻔뻔스럽게 부정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한 게 아니라 ‘요원’을 끌어내라고 했다는 궤변까지 동원됐다. 마치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는 듯하다. 윤 대통령 쪽은 이런 식으로 헌법재판소를 농락해 대통령직 파면을 어떻게든 모면해보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와 변호인단이 한사코 내란죄 수사를 헌재 탄핵 재판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탄핵 재판에서 이겨 대통령직을 유지하면 내란죄 수사도 유야무야시킬 수 있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꿈을 꾸기엔 국회에서의 증언과 검·경 및 공수처의 수사로 이번 내란 사태의 진실이 너무나 많이 드러나 있다. 하루빨리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이번 폭동 사태는 우리나라에서도 극우 세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단초가 될 위험이 있다. 주변부에서만 맴돌던 극우 세력이 공론장을 흔드는 무시못할 세력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과거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시기 득세했던 극우 세력이 반공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이번 폭동의 주도자들은 극우 대통령의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 의혹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특히 법원에 난입해 건물 집기를 마구 파손하고 방화까지 시도했으며, 심지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를 공격하려 했다는 점에서 극단주의화하고 있다. 이 세력은 극우 개신교 일파라는 조직력과 극우 유튜버라는 선전도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극우세력의 득세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시킬 잠재적 위험성을 갖고 있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보수든 진보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인과 시민이라면 극우 세력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그들이 세를 불리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정치 윤리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 주류가 이런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 주요 정당이 극우 세력에 사실상 포획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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