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Tech Powers]'배터리 전쟁' 저자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고정 칼럼
<17>미국의 새로운 AI 수출 통제, 글로벌 기술 지형 재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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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고도화된 독점 인공지능(AI) 모델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도입할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조치를 임기 말에 발표해 AI 경제의 대규모 성장을 기대하던 일부 동맹국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최첨단 AI 모델과 반도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이들 국가의 기술 활용에 제동을 건다.
미국의 AI 기술 확산 규제는 처음으로 전세계 모든 국가를 포괄했다. 지도상에 어떤 회색 지대도 남기지 않았다.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한국, 일본, 대만을 포함한 미국의 18개 주요 동맹국들은 미국의 최첨단 반도체와 AI 모델에 계속해서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반면 폴란드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핵심 동맹국을 포함해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같은 서유럽 국가들, 그리고 AI 개발 야망을 가진 걸프 지역의 부유한 국가들은 최첨단 AI 반도체 수입량에 제한을 받는다. 이들 국가는 수입량이 연간 5만 개의 할당량을 초과하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거나 미국과 특별 합의를 해야 한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은 기존처럼 AI 기술에 접근할 수 없다.
2023년 10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걸프 지역 국가들은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만 최첨단 AI 반도체를 수입할 수 있었다. 이번 규제가 올해 5월부터 발효되면 이들 국가의 수입 절차는 간소화될 예정이나, AI 야망의 한계는 더욱 명확해질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대규모 AI 처리 센터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과거 이들 국가는 수입 승인 대기를 겪기도 했다.
폴란드와 스위스에서는 새로운 규제에 대해 대중과 엘리트들의 불만이 상당하다. 두 나라의 반도체 구매량은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러한 규제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다. 스위스는 이번 달 다보스 포럼에서 시작된 120일간의 협의 기간 동안 제한 완화를 위한 로비 활동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연간 5만 개의 반도체 제한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규제는 엔비디아 H100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같이 AI 응용 분야에 사용되는 최첨단 반도체에만 적용된다. 이러한 반도체 개당 가격은 약 3만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이 할당량이 문제로 작용하려면 해당 국가가 연간 최소 15억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AI 펀드는 올해 약 11억 달러를 받을 예정인데, 글로벌 투자자인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대형 기업들의 추가 투자 가능성을 고려할 때 실제 한도에 위험할 정도로 근접하는 액수다.
2등급(Tier 2)에 속한 모든 국가가 자국 AI 챔피언을 육성하려는 야심찬 전략을 가진 건 아니다. 또 2등급 제한을 받는 국가들도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AI 컴퓨팅 센터 구축 장소로 부상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AI 컴퓨팅 역량의 지역화가 원격 접속 시 지연 시간을 방지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등급 규제는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AI 처리 시설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투자 기업 입장에서 처리 역량 확장이 제한된 2등급 국가보다는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는 인접 국가가 투자처로서 더 유리하다.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AI가 중심이 되는 차세대 산업 혁명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2등급 그룹에 속하는 것, 더 나아가 3등급 그룹에 포함되는 것은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있어 심각한 장애물이 될 것이다. 세계는 확실히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들은 AI 기업들이며, AI 기반 기능이 대부분의 인기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에 도입되고 있다. 현시점에서 AI 기술에 있어 미국 의존을 대체할 현실적 대안은 없다. xAI, 오픈AI, 앤트로픽, 엔비디아와 같은 성공적인 AI 기업들은 모두 미국 기업이다.
한편 게이밍에 사용되는 반도체나, 대학 등의 연구 기관에서 다양한 과학 분야의 연구·개발(R&D)에 활용되는 강력한 AI 반도체는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규제는 서버 응용 분야에서 사용되는 최첨단 AI 반도체에만 적용되며, 상대적으로 낮은 성능의 서버용 AI 반도체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2등급 국가 내에서 연간 1700개 이하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소매로 거래하는 경우 역시 규제되지 않는다.
이번 규제의 영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두 번째로 논의할 대목은 '연간 5만 개의 반도체 제한'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다. 이는 많은 것일까, 적은 것일까? 현재 주요 AI 처리 클러스터는 약 2만 개의 반도체로 구성된다. 일론 머스크의 xAI는 지난해 10만 개의 반도체로 구성된 사상 최대 AI 처리 클러스터를 배치하며 기록을 경신했다. 이 프로젝트의 비용은 약 40억 달러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5만 개의 반도체 제한(필요 시 최대 10만 개로 확장 가능)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한 국가가 이 분야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거나, 진정한 범용 인공지능(AGI,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가설적 기계 지능)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AI 처리 센터의 성장세는 놀랍다. 말레이시아는 단독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용한 AI 처리 용량에 맞먹는 3GW 규모의 용량을 구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처리 센터에는 안정적이고 저렴하며 친환경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며, 이는 세계가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미국의 AI 리더십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대규모로 경쟁력 있는 AI 칩을 생산할 기술을 갖추지 못했으며, 선진화된 AI 모델에서도 미국에 뒤처져 있다. 또 AI 관련 기술 표준 부문에서도 미국에 밀린다. 사실상 중국 외부에서는 중국산 AI 칩이나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기술 솔루션을 구축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과 동맹국의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 한 AI 분야에서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할 선택지가 거의 없는 셈이다.
물론 이 기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중국은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지만, 이를 단기간에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제재들과 미국 및 동맹국 기업들의 R&D 성공에 따른 결과다.
이번 규제는 이전 규제와 마찬가지로 중국 기반 엔지니어들이 최첨단 AI 컴퓨팅 파워에 접근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는다. 클라우드를 통해 원격으로 이러한 기술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중국 기업이 싱가포르를 통해 AI 컴퓨팅 파워를 구매하는 것과 같은 원격 접근을 제한하는 규제는 없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AI 역량을 추가로 제한하려는 경로를 이어간다면, 이러한 원격 접근을 제한하는 규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중 용도(민간 및 군사적 활용 가능성)가 있는 기술 응용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성장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려는 아이디어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처음 등장했고, 이후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까지 이어졌다.
한국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 국가로서 AI 발전으로부터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일 뿐만 아니라, 반도체 기술 일부 부문에서의 세계적인 리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과는 놀랍지 않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hitechcolumn@gmail.com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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