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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중국 광저우 모터쇼에 참석한 자동차 전문가들은 한 중국 회사가 선보인 새로운 자동차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촌스러운 보라색 페인트는 칠이 고루 되지 않았고, 문짝도 꼭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제너럴 모터스(GM) 임원 출신인 자동차 산업 전문가 마이클 던의 말을 빌려 “이 자동차는 업계의 웃음거리가 됐다”면서, “중국 자동차 브랜드가 단시간에 글로벌 경쟁자들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24년, NYT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이 자동차 회사를 재조명했다. 한때 업계의 조롱을 받았던 이 브랜드가 전기차 글로벌 1위 테슬라 뒤를 바짝 추격하는 거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자동차 시장에도 상륙한 비야디(BYD) 이야기다.
NYT가 붙인 ‘테슬라 킬러(Tesla killer)’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비야디는 채 2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비야디는 2022년, 2023년 전기차 판매 대수 증가율이 전년 대비 각각 144%, 184%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테슬라와의 판매 대수 격차를 2만4000대까지 좁혔다. 테슬라의 바로 턱밑까지 바짝 따라붙은 셈이다. 반면 테슬라는 2012년 주력 차종인 ‘모델 S’ 판매를 시작한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판매 대수가 전년 대비 1% 감소했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낮게는 38%, 높게는 87%까지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업계에서 비야디가 테슬라를 따라잡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대체 BYD는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핵심을 꼽으라면 우선 기술 혁신을 들 수 있다.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에 위치한 비야디 본사에는 ‘기술은 왕, 혁신은 근본(技術為王 創新為本)’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이 문구처럼 비야디는 못을 박아도 불이 나지 않는 ‘블레이드 배터리’, 자동차에서부터 지상 모노레일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운송수단 전기화 기술을 비롯해 5만 6000여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꾸준한 기술 혁신을 위해 전 세계에 끌어모은 엔지니어도 11만 명 이상이다.
이렇듯 인재를 모으고 기술 혁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NYT가 비야디의 연례 보고서를 바탕으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총 26억달러(약 3조7900억원)를 비야디에 지원했다. 택시 회사들이 비야디 전기차를 살 때 제공하는 혜택 같은 간접 지원 액수는 제외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비야디가 중국 정부에서 받는 지원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하지만 비야디가 단순히 막대한 정부 지원 덕분에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1위가 되기 위해 쏟은 비야디의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비야디 본사에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선산(深汕) 공업단지는 밤에도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아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연구 인력들이 밤낮없이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의 도움을 받아 24시간 풀가동되는 이곳 조립공장에서도 직원들이 매일 생산량 목표치를 설정하고 그 목표치 초과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마디로 비야디의 성공 신화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근로자들의 노력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바야디처럼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하는 중국 기업과 비교하면 요즘 우리 기업들은 안일한 타성에 젖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으로 운영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장벽에 가로막혀 산업 현장 이곳저곳에선 마감을 앞두고도 생산 라인이 가동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감이 몰려도 규제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사태 역시 종종 벌어진다. 여기에다 거대 노조의 잦은 파업은 수시로 기업 경쟁력을 깎아내리고 있다.
정치권 역시 이 안일함에 일조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주 52시간제에 이어 산재 사망자가 생기면 경영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법, 노조의 불법 행위에도 손해 배상을 면제해 주는 노란 봉투법 등으로 인해 기업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하기 어렵도록 장애물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폐해는 벌써부터 조금씩 나타나는 중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동아시아 주요 경쟁국의 수출 경쟁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중국의 수출 규모는 77% 늘어난 반면, 한국은 16% 남짓 늘어나는데 그쳤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부문에서도 한국의 수출 증가율(108.8%)은 중국(255.9%)에 크게 뒤졌다.
만약 지금 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은 어떤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될까.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브랜드들이 단시간에 글로벌 경쟁자들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는 외신 보도를 접하게 될까 두려워지는 요즘이다.
오윤희 국제부장(oyoun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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