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추구한 김정은…이탈 방지 위해 '군심' 다지기 행보 이어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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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드론이 포착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의 모습. 사진은 젤렌스키 대통령 X(옛 트위터) 영상 갈무리. 2024.12.17 ⓒ News1 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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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참전한 북한군의 손실과 대우가 예상보다 더 참담하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 국가정보원 등에 따르면 러시아와 북한 당국이 이들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정확하게 확인되진 않았지만, 북한의 참전 증거를 없애기 위해 자국 부상병까지 처형·포격하거나 전사자 시신의 얼굴을 훼손하는 행위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최근 생포된 북한군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파병 급여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받지 못한 채 "살아 돌아오면 영웅으로 대우한다"는 통보만 받았다고 한다.
국정원이 공개한 러시아 파병 북한군 규모가 약 1만 2000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30% 가까운 병력이 부상 혹은 사망으로 전선에서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월이면 전군 사실상 궤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북한 관영 매체들은 여전히 파병에 침묵하고 있다.
과거 희생된 군인 예우 어땠나…'보훈' 통해 국가 충성 기제 형성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최고지도자들의 핵심 권력기반은 군부였다. 그들은 집권 시기 한국전쟁 참전 군인, 아울러 각종 사고로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는 등 대대적 행사를 통해 군심을 챙겨왔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다양한 보훈 관련 법령·결정을 발표하며 적극적인 보훈정책을 추진, 군인 예우의 뼈대를 만들었다. 북한 최초의 단독 보훈법령은 1949년 5월 발표된 '조선인민군대 전사 및 하사관들의 부양가족 원호에 관한 결정서'로, 이는 가족을 조선인민군에 보낸 사람에 대한 원호를 핵심으로 한다.
1966년 시리아와 공식 수교한 이후 군사협력에 집중한 김일성은 1967년 발발한 제3차 중동전쟁 직후 시리아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에서는 북한의 전투기 조종사, 군대 훈련 조교 등도 지원했다.
외교부의 오픈데이터 2016년 자료에는 김일성 집권 시기였던 1973년 시리아에는 200명의 북한 전차 조종사와 600명의 쿠바 전차 조종사가 주둔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중 희생된 최소 2명의 조종사는 시리아 다마스쿠스 근처의 있는 묘지에 묻힌 것으로 확인된다.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 김정일은 체제 관리를 위해 군을 통치수단으로 삼는 '선군정치'을 시행하면서 군대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김정일은 최고사령관 추대 이후 10차례에 걸쳐 1000여 명의 군 장성 진급조치를 단행하여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구축했다.
김정일은 지난 2002년 9월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해 현지의 '북한군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북한 공군 조종사와 정비사 14구의 유해를 35년 만에 북한으로 송환해 당시 평양의 '인민군열사묘'에 안치했다. 이들의 유해 송환 및 장례 등에 대해선 '국가적인 행사'로 진행할 것을 특별히 지시하고 "웰남(베트남) 인민의 반미항전에 참가해 싸우다가 희생된 열사"라며 공개적으로 추모하며 치켜세웠다.
국가 차원의 혜택은 군인 가족들이 나라에 충성하게 만드는 기제이자 일반 대중에게 체제의 정당성과 국가의 필요성을 환기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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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 영웅열사추모비를 찾아 헌화하는 모습.(자료사진) 2019.3.3/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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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정치 주력한 김정은…정치적 위상 낮아진 군대"
반면 김정은은 집권 후 '당에 의한 군 통제'를 내세워 군의 정치적 위상을 상대적으로 낮춰왔다. 그는 국방력 강화를 지시하면서도 그 기반에는 당 회의체 회복을 통해 문제 해결의 출로를 찾고 여기에 충성을 요구하는 형식으로 권력 기반을 다졌다.
또 선대 수령들의 사상적 업적을 지속으로 심화,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치, 도덕적 의무를 벗어나 현재 "새 시대 우리 당과 혁명의 유일한 지도자상"으로 규정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김정은 체제의 특징이라는 분석도 있다.
선대에 비해 빠르게 홀로서기 통치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던 김정은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인한 리더십 손상 문제, 장기화된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 가중, 수해 등 각종 난제에 직면하면서 리더십 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 파병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파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생긴 민심 이반이 김정은 체제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국내에서 파장을 억제할 수 있는 확실한 계획을 세울 때까지 파병 및 사상자 발생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숨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사자 가족을 예우하는 등 과거 선례를 따라 '군심 다지기' 행보를 앞으로 자주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은 지난 2013년 10월 북한 해군 790부대 구잠함 233호가 훈련 중 사고로 침몰해 해병 27명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특별히 부대 인근에 '합장묘'를 만들어 안치하도록 했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묘지의 주인을 자신이 하겠다고 하면서 묘비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으라고 지시하는 등 이들을 각별히 챙겼다.
2015년에는 인공위성 '광명성-2호'의 발사 작전을 수행하다가 희생된 14명의 조종사를 추모하기 위해 위훈비를 세우기도 했다. 2017년에는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 당시 책임지휘관이었던 김동원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그의 유해를 한 급 높은 '애국열사릉'으로 이전토록 지시한 바 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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