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기피·변호인 해임 등 총동원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첫 재판에 출석하며 지지자 등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는 기소 2년 2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나왔다. 선거법은 1심을 6개월 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이 법을 어긴 것이다.
법원의 재판 지연 문제는 유력 정치인 앞에서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일반인들의 형사 사건 1심이 평균 7개월도 안 돼 끝나는 반면, 정치인이 연루된 재판은 1심 선고에만 수년이 걸리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2020년 1월 기소 후 5년 1개월 만인 다음 달에서야 2심 선고가 나온다. 2023년 11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임기를 채웠고, 역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 |
그래픽=송윤혜 |
윤미향 전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는데, 4년 2개월 만인 지난해 11월에서야 확정 판결이 났다.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가 확정됐지만 이미 국회의원 임기를 채운 뒤였다.
법원은 국가보안법 사범의 의도적 재판 지연에 휘둘린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구속 기한(6개월)이 만료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 풀려나는 재판 지연 전술에 법원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 지령을 받고 지하 조직을 꾸린 혐의로 2021년 9월 기소된 ‘충북동지회’ 피고인들은 5차례 법관 기피 신청을 내 재판이 총 11개월이나 중단됐다. 이 외에도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구속 집행정지 신청 등을 내며 1심 선고까지 883일이 걸렸다. 2023년 4월 기소된 제주 ‘ㅎㄱㅎ’ 조직원 3명도 지난해 7월 법관 기피 신청을 냈다. 이들이 항고, 재항고까지 거듭하며 중단된 1심 재판은 오는 3월에서야 재개된다.
최근에는 정치인과 국가보안법 사범 사례를 학습한 일반인들이 형사소송법을 악용해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한다. 허위 사실을 방송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20년 8월 기소된 유튜버 A씨는 4차례나 법관 기피 신청을 냈다. A씨는 또 자신이 송출했던 유튜브 방송이 증거로 제출되자 “모든 동영상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부동의 의견을 내기도 했다. A씨에 대한 1심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선고는 기소 3년 4개월 만인 2023년 12월에야 나왔다.
허위 채무를 등록한 혐의로 기소된 B씨는 법정 출석이 어려울 정도의 고령인 피해자 부모에 대해 증인 신청을 하고, 다수의 공공기관에 관련 문서를 보내달라는 신청을 했다. 이미 확정된 관련 사건에 대한 재심도 신청했다.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과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B씨의 1심 선고에는 4년 11개월이 걸렸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무고하고, 두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C씨의 경우 재판 지연 방법을 총동원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11년이나 걸렸다. C씨는 재판부 기피 11회 신청, 국민참여재판 9회 신청, 변호인 해임 및 선임 등을 반복했다. 기피 신청이 기각되면 항고·재항고로 시간을 끌었다.
공판 담당 검사는 “요즘은 일반 사건에서도 피고인들이 인터넷으로 찾아본 소송 절차를 재판 지연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법원이 이를 적절히 제한하지 않으면 재판 지연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유종헌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