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美 의사당 폭동 사건 계기
정치학자가 내전 우려하며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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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바라 F. 월터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336쪽|2만2000원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교수인 정치학자가 미국에서 남북전쟁(1861~1865)에 이은 두 번째 내전이 일어날까 우려하며 쓴 책이지만, 많은 독자가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 상황을 떠올리며 읽을 것 같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그리고 벌어지고 있는 내전을 분석한 저자는 말한다.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게 될지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
내전은 항상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국가에서 일어난다.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anocracy)’라고 부른다. 1974년 노스웨스턴대 테드 로버트 거 교수가 전 세계 각국 정부의 민주적 특성과 독재적 특성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한 뒤 만들어 낸 신조어다. 이 체제에서 시민들은 완전한 투표권 등 민주적 통치의 요소 중 일부를 누리지만, 광범위한 권위주의적 권한을 지니고 견제와 균형을 거의 받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살아간다.
민주주의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대부분 매우 인기가 높은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안전장치에는 대통령에 대한 제약과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 등이 있다.”
저자는 “20세기 초 내전의 대부분은 이데올로기나 계급에 의해 야기됐지만, 20세기 중반을 시작으로 점점 많은 내전이 종족, 종교, 인종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체성 정치’를 기반으로 파벌화되며 촉발된다”고 분석한다. 견고해진 파벌(faction)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은 추종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협소한 의제를 추구할 여지가 생긴다.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희생시키며 통치하려 한다. “시민들이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정체성에 기반해 행동하거나 투표하도록 유인하는 방향으로 법원 같은 기관들을 조직한다.”
저자는 내전의 대표적인 징후로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기꺼이 차별을 호소하고 차별 정책을 추구하려는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의 등장을 꼽는다. 도널드 트럼프를 ‘사상 최고의 종족 사업가’라 규정하며, 지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건을 들어 미국이 ‘아노크라시’ 상태로 접어들었다 진단한다.
저자가 무엇보다도 우려하는 것은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폭력’을 옹호하는 이들의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치적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오늘날 미국인들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점점 폭력을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33%와 공화당 지지자의 36%가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어느 정도 느낀다. 2017년에는 양당 지지자의 8%만이 그렇게 생각했다.”
‘종족 사업가’들은 폭력을 찬양하며 지지자들의 ‘순교’를 부추기기도 한다.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의 배후 세력으로 꼽히는 오스 키퍼스(Oath Keepers) 창립자 스튜어트 로즈는 17세 소년 카일 리튼하우스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서 2명을 살해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그를 ‘영웅, 애국자’라 칭했다.
소셜미디어가 국가적 혼돈을 부추기는 도화선으로 작용한다. “전에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가 생겨났지만,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 소셜미디어 덕분에 후보자들이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관해 시민들이 가질 법한 의심을 키우거나 편승할 수 있다. (…)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최소한 일부 유권자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하면서 시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1964년부터 2019년까지 워싱턴 정치인들이 ‘옳은 일을 한다’ 신뢰하는 국민 비율은 77%에서 17%로 폭락했다. 군부 통치를 좋다고 여기는 이들도 1995년 7%에서 2022년 18%로 늘어났다.
2022년 미국서 출간된 책으로 트럼프 재선 관련 이슈를 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다인종 국가 미국의 정체성 정치로 인한 분열 양태를 우리 정치 상황에 단순 대입하기도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제만 놓고 보자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저자가 말하는 내전 발발의 위험성을 읽을 수 있다. 다만 “소셜미디어를 규제하면 세계 곳곳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강화될 것이다”라는 주장에는 갸우뚱하게 된다. ‘규제’와 ‘검열’의 경계는 어떻게 정할 것인가. 원제 How Civil Wars Start.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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