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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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벌레로 눈뜬 남자의 비참한 죽음을 그린 괴기소설(‘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보헤미아 왕국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4년 41세의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들을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럼에도 브로트는 이 놀라운 천재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 카프카가 쓴 모든 글을(미완성작은 물론이고 편지 엽서 일기까지 남김없이) 곧바로 출판해 버렸다. 이런 정도가 카프카에 관해 흔히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실종자’는 카프카가 1911년에 처음 시도한 장편이고 미완성이다. 집안의 하녀가 17세 소년 카를 로스만의 아이를 임신하자, 하녀가 며느리 노릇을 하게 될까 우려한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서 아주 멀리, ‘아메리카’로 내쫓아버린다. 여행 가방 한 개와 약간의 돈을 지니고 뉴욕항에 도착한 카를은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가방을 잃어버리지만, 바로 그 순간 아메리카로 이민해 크게 성공한 외삼촌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그리고 소설은 낯선 타향에서 점점 더 바닥으로 추락해 가다 끝내는 ‘실종되고 말’ 카를의 여정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자수성가한 가장과 집안 체면을 구기는 아들, 절연의 위협, 낯선 세계(물리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에서의 적응 문제,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에 대한 견해차, 온전한 의미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하기 등은 카프카 소설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들이다. 첫 소설답게 ‘실종자’는 다른 장편들에 비해 카프카적 주제들이 더 선명하고 알아보기도 쉽다. 카프카적 기이함은 어쩔 수 없지만, 독자를 짓누르는 특유의 무거움이나 생경한 알레고리도 (별로) 없다. 그리고 카프카가 왜 문학을 하려 했는지 알 만한 단서들이 많이 있다.
무적의 영웅도 용맹한 전사도 아니면서 불의를 외면하지 못하는 소년은 허약한 몸으로 세계에 맞선다. 그는 아무리 해도 순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사회는 이런 맹랑한 자의 고집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정의’의 문제라고 믿는 것을 사회는 ‘규율’의 문제라고 한다. 카프카는 이 대립을 문학 형식으로 드러냄으로써, 타자들의 룰에 저항했다. 그것은 정치투쟁도 계급투쟁도 아니었지만, 일개인으로서 세계에 맞서는, 가장 끈질긴 비폭력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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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은 독서가·'평균의 마음' 저자 |
[이수은, 독서가·‘느낌과 알아차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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