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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 (금)

트럼프 2.0의 북-미 정상회담과 위태로운 세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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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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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연결된 위기’ 저자



트럼프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 시작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 알던 세계와 너무나 다른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구호가 그 이전 익숙한 “미국 넘버원” 구호와 얼마나 다른지 보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넘버원”이 세계를 공통의 기준으로 묶고 여기에 예외 없이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면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면 예외가 일반이 되도록 미국이 언제든 변신해 세계를 강제하겠다는 선언이다. 트럼프 2기의 주도자들은 미국 대외정책의 실패와 비극이 세계 도처에 개입한 강경 ‘네오콘’에 휘둘렸기 때문이라 보고 이들과 단호히 선 그을 것을 주장한다. 이제 미국은 세계에 대한 무력 개입에서 벗어나 ‘평화’의 수호자로 변신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의 공통의 기준은 미국 자신도 제약받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제 “미국 우선주의”라는 자기만의 기준을 내세워 ‘무원칙의 세계’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 함의를 미국 국내 정치 차원과 국제 질서 차원에서 보자.



트럼프 2기 미국 정치의 변화를 살펴볼 관찰점은 세가지이다. 첫째는 줄곧 이어진 트럼프의 ‘기이한 인선’이다. 트럼프가 지명한 장관들의 역할은 각자의 부서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부서를 ‘부수러 온 자들’이다. 둘째 관찰점은 트럼프-머스크 연합이다. 연합에 참여한 머스크에게 중요한 것은 탈규제인데, 이는 자율주행자동차, 트위터의 후신인 엑스(X), 그리고 스페이스엑스 모두에 해당한다. 머스크라면 우주 산업의 비효율성을 깨기 위해 나사(NASA) 기능을 대폭 조정해 그 기능 일부를 스페이스엑스가 인수하는 민영화도 추진할 수 있다. 앞의 둘과 연관된 셋째 관찰점은 ‘딥 스테이트’에 대한 공격인데, 트럼프 1기는 이 ‘딥 스테이트’ 탓에 자신들의 목표가 꺾였다고 여긴다. 국가가 기업이라면 새로운 주력 산업을 추진하려 할 때 굳이 과거의 부서들을 그대로 유지할 필요도 없고 유동적 시장 요구에 맞춰서 어떤 부서든 개편을 수시로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세기 미국 자유주의의 핵심 구도였던 법인 기업 운영에 대한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행정부, 집단적 권리의 형성과 관리의 중재자로서 행정부라는 틀은 이렇게 종말을 고할 것이다.



예상되는 국제 질서의 재편을 살펴보자. 트럼프는 북핵,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을 동시에 해결하고, 이 세곳에서 발 빼고 부담을 현지 관련 세력에 이전하려 할 것이다. 우리에게 현실적인 북핵 문제부터 보자. 트럼프 재선을 예상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재추진하겠다는 북한 입장은 러시아를 지원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파병하면서 분명해졌다. 북한의 대미 협상과 핵전략의 중대한 전환점은 2019년 초 ‘하노이 노딜’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남한 패싱과 남한에 대한 전술핵 위협의 확대 및 미국을 겨냥한 전략핵 위협 증강의 큰 변화가 있었다. 2025년 북-미 정상회담이 재추진된다면 남한을 배제하고 합의 보증자로 푸틴을 등장시키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고, 이 회담은 미국 겨냥 전략핵의 동결·감축이 주 의제가 되고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은 논의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미사일방어체계 지원을 받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서 다루지 않은 북한 전술핵 위협에 대한 대응 비용은 이후 한국 대상 방위비분담금 협정 청구서에 올라올 수 있다.



푸틴을 북-미 정상회담에 등장시킬 수 있다면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주도하는 데도 유리한 조건이 된다. 미국은 종전 후 우크라이나의 긴 ‘비무장지대’ 유지에서 발 빼고 그 군사적 책임을 ‘유럽’에 넘길 텐데, 부담을 떠안을 유럽은 안보 불안이 고조되고 국내적으로 극우세력 발언이 더 거세질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은 2020년 준비된 ‘아브라함 협정’의 길을 따르겠지만, 이 또한 분쟁의 종식이 아니라 분쟁 책임을 현지에 넘기는 방식의 봉합일 것이다.



2차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얄타체제’라고 한다면 얄타체제 해체 이후의 세계는 “미국 우선주의”의 새 질서로 재편될 것인데, 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다자주의적 질서’가 무너진 이 세계에서 강대국 아닌 나라들 그리고 힘없는 민중은 생존을 지탱할 공통 규범의 상실로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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