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보건원에 '동작 그만' 명령, "예산 28% 삭감" 공약…
바이러스 연구 지원 중단 "검토 중", 연구자들 "옮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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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열린 취임 축하 퍼레이드서 행정 명령에 서명을 한 뒤 펜을 던지고 있다. 2025.01.21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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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과학적' 발언을 쏟아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이 미국 연구자들이 긴장하고 있다. 1기(2017~2021) 집권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연방정부의 긴축 재정을 목표로 기초연구 R&D(연구개발) 예산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불신을 드러냈던 의학·공중보건 분야 기초연구가 첫 타깃이 됐다.
22일(현지시간)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미 국립보건원(NIH)에 보조금 검토 회의 취소,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 중단, 채용 동결, 무기한 이동 금지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NIH는 연구자 교육 워크숍을 중단하고, 보조금 관련 회의 무산을 통보했으며, 구인 광고를 철회하고, 학회 발표를 위한 여행조차 취소하도록 했다. 또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HHS)는 NIH 구성원들에게 규정과 지침, 보도자료는 물론 SNS(소셜미디어)까지 게시하지 못하도록 했다. NIH 고위인사는 사이언스에 "집단 행정명령과 지시의 영향은 파괴적"이라고 말했다.
NIH는 제약·바이오 분야 기초연구 지원이 핵심 업무다. 한 해 예산 474억달러의 절반을 기초연구 지원에 쓴다. 그 결과, 2010~2016년 FDA(미 식품의약국)이 승인한 210개 신약 모두가 NIH가 지원한 논문에 일정 부분 근거를 뒀고, 이 논문의 90%는 기초연구 분야였다. NIH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도 당황했다. 한 연구자는 사이언스에 "과학계 모든 이들이 걱정하며 NIH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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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자폐' 주장하던 트럼프…반과학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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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H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눈엣가시였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속임수"라 주장했고, "백신 예방접종은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반백신 진영을 옹호했다. 이에 1기 집권 첫해부터 NIH 예산을 20% 가까이 깎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백신 효과를 부인하거나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해 대처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2020년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과학계의 우려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NIH의 위기는 현실화됐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NIH 예산 28% 삭감'을 공약했고, 2기 정부의 HHS 장관에 지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대표적인 백신 회의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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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였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지난 5월 1일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14일 (현지시간) 보건복지 장관에 백신 음모론자로 알려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지명했다. 2024.11.15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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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바이러스 연구에서 비롯됐다며, 관련 연구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중단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보도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러스 '기능 향상(gain-of-function)' 연구를 위한 연방 자금 지원을 일시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기능 향상 연구는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는 경로, 백신을 회피하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통제된 환경의 실험실 내에서 바이러스 기능을 조절하는 연구다. 바이러스 연구에서는 필수적이지만, 미 공화당 일각에선 기능 향상 연구가 코로나19 대유행의 원인이라고 의심해 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NIH 원장 후보인 제이 바타차랴 박사도 기능향상 연구 중단을 지지해 왔다.
반면 존스 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의 면역학자인 지지 그론발은 "인간의 보호에 필수적인 연구를 중단하는 것은 끔찍한 생각"이라며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위협을 해결할 수 없다. (연구 중단은)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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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연구, 지원 중단"…연구자들, 미국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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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공중보건 외 기초연구도 R&D 예산 축소의 삭풍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 대선 직전인 지난해 10월 과학저널 네이처가 2000명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6%가 기후변화·공중보건 분야 등에서 트럼프의 정책을 반대했고, 일부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거주지나 연구 거점을 미국 밖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답했다.
미국 과학자단체 우려하는과학자연합(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의 그레첸 골드만 회장은 네이처에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며 "정부가 과학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약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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