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시뮬레이션 돌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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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아파트 철근 누락과 부실시공 문제를 취재하는 7개월여 동안 건설 현장 안팎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철근 몇 개 빠져도 안 무너져요”였다. 반면 앞서 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건의 핵심 원인은 전단보강근 누락, 즉 철근 누락이었다. 일각에서는 건설 현장의 느슨한 안전 인식이 실제 사고로 이어진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히어로팀은 철근 누락이 건물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내진 및 구조설계 전문업체인 ‘SH구조엔지니어링’의 정승열 대표와 함께 일주일간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했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 ‘1세대 내진 설계 전문가’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구조 설계에 참여했다. 시뮬레이션에는 미국 CSI(Computer and Structures Inc.)사의 ‘퍼폼3D’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내진 설계에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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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팀은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난 상황을 가정했을 때 철근 시공 상태가 건물 붕괴에 미치는 영향을 3차원(3D) 시뮬레이션으로 알아봤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사례를 감안했다. 국내 언론에서 부실시공과 지진, 아파트 붕괴 사이의 연관 관계를 검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근 24% 빠진 건물, 지진 24초 뒤 와르르
높이 80m 빌딩에 규모 6.7지진 가정
철근 100%땐 흔들리다가 중심 회복
“철근 부족하면 하부 벽부터 타격
한순간에 무너지는 ‘취성파괴’ 발생”
평상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부실시공 부분이 ‘시한폭탄’ 작용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리히터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2021년 5회, 2022년 8회, 2023년 16회 발생하며 점점 늘고 있다.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에서 규모 5.1∼5.4 지진이 발생했을 때 포항에서만 총 754개 주택이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아파트 등 7곳은 기둥이 건물을 버틸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돼 철거 판정을 받았다. 2011년 준공된 4층 규모 건물은 기둥 8개 중 3개가 주저앉았는데 기둥 속 철근이 절반가량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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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에서 발생한 규모 5.1~5.4의 지진으로 빌라 기둥이 부서진 가운데 철근이 드러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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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감안해 히어로팀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서울에 있는 높이 80m(지하 1층∼지상 20층) 빌딩’을 가상 설계했다. 일반 아파트로 치면 30층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에 규모 6.6∼6.7 지진 상황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버틸 수 있는지 검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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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경기 용인시 SH구조엔지니어링 본사에서 정승열 대표가 철근 누락이 건물 붕괴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 자료로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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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철근 100% 시공’ 건물은 지진이 일어나자 아래쪽부터 물결치듯 흔들렸다. 이후 한쪽으로 기울다가도 ‘오뚝이’처럼 중심을 회복했다. 60초간 지진이 계속됐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최종적으로 ‘안전’ 판정을 받았다.
그다음은 ‘철근 76%만 시공’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지진이 시작된 뒤 24초 만에 폭삭 무너졌다. 처음에는 건물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더니 15초가 지나자 건물 맨 아래 벽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건물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며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철근 57% 시공’ 건물을 시험했다. 실제 공사 현장에서 아파트 전체 철근의 절반을 빼먹는 사례는 매우 드물 것으로 보이지만 철근 누락의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실험이었다. 이 경우 건물은 지진 시작 7초 만에 매우 빠르게 무너졌다. 지진 직후에는 미동도 없다가 갑자기 S자형으로 크게 휘더니 순식간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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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이 적정량의 57%만 시공된 건물이 리히터 규모 6.7의 지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한 시뮬레이션 화면. 건물 전체가 S자로 휘어 있다. 이 건물은 7초 만에 붕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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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아니어도 부실은 위험… 건물 한계 넘어서
히어로팀은 지진 등 대재난이 아닌 일상 상황에서 철근 누락과 부실시공이 건물에 미치는 위험성도 함께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먼저 철근과 콘크리트가 모두 100% 설계대로 잘 시공됐을 경우에는 건물의 내력비가 ‘0.743’으로 나타났다. ‘내력비’란 건물이 최대한으로 버틸 수 있는 무게와 현재 가해지는 무게 사이의 비율이다. ‘내력비 0.743’은 ‘건물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 힘의 74.3%만 쓰고 있다’는 뜻이다. 나머지 25.7%는 일종의 ‘남는 힘’이다. 지금보다 25% 더 무거운 무게가 가해져도 건물이 버틴다는 뜻이다.
●美마이애미-검단 주차장 붕괴 원인도 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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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 서프사이드에서 아파트 ‘챔플레인 타워스 사우스’가 붕괴된 모습. 미 조사 당국은 지하주차장 기둥의 철근 일부가 누락됐을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플로리다=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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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도 철근 누락이 실제 붕괴로 이어진 사건이 있다. 2021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 서프사이드에서 12층짜리, 136채 규모의 아파트 ‘챔플레인 타워스 사우스’가 무너져 98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입주민들이 잠든 새벽에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아파트가 무너졌다. 마치 팬케이크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붕괴돼 ‘팬케이크 붕괴’라고도 불렸다.
지난해 3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발표한 ‘사고 예비 조사 보고서’에는 최초 붕괴 지점인 주차장 쪽 기둥의 철근이 일부 누락됐을 가능성이 담겼다. 설계도면에 따르면 기둥과 1층 로비 바닥을 연결하는 철근이 총 8개 들어갔어야 했는데 실제로 보니 절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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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29일 붕괴된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비싼 L자 철근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I자 철근을 시공한 것이 붕괴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동아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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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철근 부실시공이 붕괴로 이어진 적이 있다. 2023년 4월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현장을 조사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일부 지점에 전단보강근이 미설치된 곳들이 발견됐다. 1995년 6월 29일 벌어져 500명이 넘게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역시 가격이 비싼 L자형 철근을 써야 할 자리에, 저렴한 I자형 철근을 쓴 것이 붕괴의 한 원인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려면 설계대로 철근과 콘크리트를 시공하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번 시뮬레이션은 철근 누락과 건물 붕괴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첫 사례”라며 “실험 결과는 대부분 고층 아파트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철근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보강 공사로 구조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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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
[①-상]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
[①-하]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
[②-상]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
[②-하]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
[③-상]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
[③-하]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
[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onga-ilbo)에서 순차 공개됩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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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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