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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앤 버드 워싱턴 교구 주교가 21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DC) 워싱턴 국립대성당 국가기도회를 열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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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가 방향을 트는 데에 대해 누가 어떤 말이라도 할까?”
21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DC) 워싱턴 국립대성당 국가기도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눈을 마주치며 “이민자와 성소수자에 자비를” 호소했던 메리앤 버드 주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언’을 고심했던 배경에 대해 말했다. 국가기도회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버드 주교는 22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설교단에 섰을 때 조금 두려웠다고 했다. 국가기도회를 준비해온 수개월 동안 그는 존엄성, 정직과 겸손 세 가지에 대해 설교하리라 생각했다. 생각은 기도회를 24시간 앞두고 바뀌었다. 더는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가 아닌 대통령 트럼프가 취임식 이후 쏟아내는 행정명령들이 저항 없이 현실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설교에 한 대목을 추가했다. 바로 자비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신문에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며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과연 (트럼프 대통령에게) 누군가 뭐라도 말할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자신이 입을 열었다.
버드 주교는 몸을 틀어 트럼프 대통령을 보고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하겠다”며 말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의 눈을 올려다봤다.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지금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했다. 전쟁지역을 피해온 사람들을 돕고 “부모가 끌려갈까 두려워하는” 어린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당부했다. 또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가정에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자녀가 있고 일부는 목숨을 위협받는” 이들을 고려해달라고 말했다. 버드 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의 농작물을 수확하고 사무실 건물을 청소하는 이들, 양계장과 육류 포장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 우리가 식당에서 식사한 뒤 설거지를 하고 병원에서 야간 교대 근무를 하는 이들”을 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이민자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들은 세금을 내고 좋은 이웃”이라고 말했다. 버드 주교를 지켜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설교가 끝났을 때 그가 눈을 마주친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불만을 드러내듯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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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1일(현지시각) 메리앤 버드 워싱턴 교구 주교(맨 앞)가 워싱턴디시(DC) 워싱턴 국립대성당 국가기도회에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서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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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버드 주교에 대해 “급진 좌파이자 강경 트럼프 혐오자”라면서 “그녀는 매우 무례한 방식으로 자신의 교회를 정치의 세계로 끌어들였다”고 비난했다. 또 “그는 어조에 있어서 형편 없었으며 설득력이 없고 똑똑하지도 않았다”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버드 주교를 공격하고 나섰다. 마이크 콜린스 하원의원은 엑스에 버드 주교는 “추방자 명단에 포함돼야 한다”고 썼고, 뉴스맥스의 도트 스탄스은 성당이 “사탄의 보금자리”가 됐다고 힐난했다.
65살의 버드 주교와 트럼프 대통령의 ‘전사’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취임 국가기도회도 버드 주교가 집전했다. 당시 기도회는 새 대통령에게 직접 언급하는 내용이 거의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기도회를 마친 버드 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에 저항하기 위해 이날 워싱턴에 모인 100만 여성 행진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2020년 6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저항은 큰 주목을 받았다.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들에 깔려 숨이 끊어진 데 항의하는 집회로 미 전역이 들끓을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집회에 나선 사람들을 ‘불법 폭도’로 규정하며 “수천명의 중무장한 군인”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위협했다. 실제 당시 ‘군사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쏘며 백악관 인근 시위대를 해산했고 거리 곳곳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맞은편에 있는 세인트존스 교회 앞에 나타나 성경을 들고 포즈를 취해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버드 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를 소품(배경)으로 사용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한 줄 상상도 못 했다며 “그가 말하고 행한 모든 일은 폭력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분노했다. “우리는 도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는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했다”는 버드 주교의 말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회자됐다.
이로부터 5년 뒤 트럼프 대통령에 “자비”를 당부한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청원에 서명한 사람은 4시간 만에 1만 4000명을 넘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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