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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 새 인천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이승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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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야구협회장을 하는데 결격 사유가 있나요? 그냥 해보자 해서 출마했죠.”
이강원(58) 꿈애장애인자립센터장은 최근 인천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이 생겼다. 상대 후보가 결격사유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이 센터장은 투표 없이 회장에 당선됐다. 17일 꿈애장애인자립센터에서 만난 이 새 회장은 취임 준비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 시·도 야구협회장에 당선된 사례는 이 새 회장이 처음이고, 다른 종목으로 확대해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강원 새 회장은 한때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다. 인천 제물포고와 단국대에서 낙차 큰 커브를 주무기로 내세우며 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2학년 때이던 1987년 ‘베체트병’에 걸렸고, 1992년 결국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이 회장은 글러브와 야구공을 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장애인 역도선수로 활동하며 체육계와 인연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옛 에스케이(SK) 와이번스와 엘지(LG) 트윈스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견 ‘독 미르’가 건네준 공을 전달받아 시구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날을 맞아 에스케이 홍보팀 쪽에서 연락이 왔다. 반려견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이 누굴까 하다가 시각장애인은 안내견이 있어서 연결됐다고 하더라”며 “야구가 익숙하기는 했지만 시력을 잃은 뒤 마운드에 처음 서니 포수에게 공이 제대로 갈지 걱정이 많이 됐다”고 했다.
이 회장은 시력과 야구협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과 코치에게 들어보니 우리나라에서 야구가 처음 도입된 도시인 인천의 명성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탄하더라. 회장을 뽑는데 인물이 없다고 하길래 내가 나가겠다고 한 게 시작”이라며 “그때 같이 있던 친구들이 놀라며 묻길래 ‘못하라는 법 있냐. 우리 센터 직원이 300명인데 아무 문제 없이 센터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비장애인들은 장애인과 교류가 없다 보니 장애인이 늘 약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과거 운동선수였을 때 장애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며 “막상 내가 직접 시각장애인이 되고 보니 의지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울시청까지 400㎞ 넘는 거리를 18박19일 동안 걸어서 완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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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 새 인천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지난 19일 당선증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강원 회장 제공. |
이 회장은 공약으로 홈페이지 개설 및 활성화, 엘리트 대회 유치, 인천지역 생활체육 활성화, 문학경기장 반환 시 야구협회 운영 관리 추진, 18살 이하(U18) 팀 창단 추진 등을 내세웠다. 이 중 프로야구 에스에스지(SSG) 랜더스가 청라로 주경기장을 옮긴 뒤 반환될 문학야구장 위탁 운영은 이 당선인의 핵심 공약이다. 문학야구장을 활용해 엘리트 대회나 사회인야구 경기, 청소년 야구 등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인천에 20개 정도 야구장이 있는데 야구협회가 운영·관리하는 곳이 없다. 그래서 대회를 운영하려면 운동장을 확보하는 게 힘들다”며 “현재 경기가 많이 치러지는 송도 엘엔지(LNG) 야구장은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청소년 야구 대회가 있을 때 학부모들 민원도 많다”고 했다.
이 회장은 홈페이지 개설부터 빠르게 공약 이행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다른 시도 야구협회는 별도 홈페이지가 있는데 인천은 그게 없었다. 홈페이지 개설을 통해 소통을 활성화하겠다”며 “인천이 예전 야구 도시 영광을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임기 4년 동안 열심히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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