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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토)

‘1조2000억 손실’ 현대엔지니어링에 불신 커진 투자자들... 앞으로 IPO 할 건설사들도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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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2000억원이 넘는 ‘어닝쇼크’를 기록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에 대한 금융투자업계의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연결재무제표로 묶여있는 두 회사는 지난 22일 2024년 잠정실적을 공개하며 조 단위의 영업손실을 공개했다. 이 회사가 연간 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2001년(영업손실액 3860억원) 이후 23년 만이다.

특히 회사가 적자의 원인으로 밝힌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는 금융투자업계에서 앞으로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이 2021년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당시에도 공사비를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공사채권’과 공사비를 청구했지만, 대금을 받지 못한 ‘공사미수금’(매출채권)이 쌓이는 상황이었다. 또 이번에 대규모 손실 처리된 사업장 중 한 곳은 IPO 당시에도 수주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곳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업장은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기까지 수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기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향후 해외 플랜트나 토목 등을 수주하는 기업들이 상장을 추진할 때 일반 제조업보다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건설사 이익 수준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며 앞으로 건설사들의 상장 추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비즈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엔지니어링 본사



23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감독원, 현대엔지니어링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본격 추진한 시점은 2021년 4월이다. 4월 9일 주요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고 5월 미래에셋증권, KB증권, 골드만삭스를 공동 주관사로 정했다. 시장 일각에선 상장 후 기업가치가 10조원 이상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지분율 11.72%·890만3270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지분율 4.68%·355만2340주)의 지분가치도 크게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다.

문제는 이 시기 이미 현대엔지니어링의 미수금(발주처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한 금액)과 미청구공사채권(공사비를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금액)이 크게 늘고 있었다는 점이다. 2021년 현대엔지니어링의 미청구공사채권은 9890억원으로 전년 4301억원보다 2배 넘게 늘었다. 미수금도 전년 7062억원에서 8005억원으로 13.3%(943억원) 증가했다. 못 받은 돈과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돈이 쌓여가는 시기에 IPO를 하겠다고 한 셈이다.

2021년 12월 금융당국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IPO를 추진할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은 투자자들에게 해외 플랜트사업의 불확실성을 언급하지 않은 채 플랜트 업황 개선을 언급했다. 이 회사가 언급한 투자위험은 자사가 보유한 우수한 플랜트 인력을 다른 회사에 빼앗길 수 있다는 인력 유출 위험 정도였다.

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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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플랜트나 토목 사업의 이익 수준에 대한 불신 확산은 더 큰 문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연간 1조2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주된 이유는 ‘인도네시아 RDMP 발릭파판 정유공장’(2018년 수주), ‘사우디 자푸라 프로젝트 패키지2’(2021년 수주) 등 2곳이다.

보통 미수금이나 미청구공사 금액은 금융감독원의 공시정보, 기업의 실적공개 등으로 숫자가 공개된다. 그러나 해외 플랜트 등에서 얼마의 손실이 발생할지는 이런 미수금, 미청구공사액과는 별도로 계약서 자체를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계약을 할 때 총액계약(Lump Sum Contract) 또는 확정금액계약(Fixed Price Contract)으로 불리는 방식으로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공했을 때 정해진 가격을 주겠다는 계약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 건설사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확정된다.

예를 들어 5년 동안 설계된 대로 정유공장을 지어주면 3조원을 지급하겠다는 계약을 맺는 식이다. 공사 진행률에 따라 3조원은 나눠서 지급된다. 그러나 급격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면 공장을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건설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늘어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돈이 확정된 가운데 손실은 계속 불 수밖에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사례처럼 미청구공사액도 미수금도 아니지만, 손실은 조 단위로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익 수준의 불확실성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큰 셈이다.

권세원 이화여대 교수(경영학)는 “해외 사업의 매출과 이익, 손실을 인식하는 시기, 공사의 진행률 등이 모두 회사의 추정으로 정해지는 것이어서 매출을 부풀리거나 이와 반대로 손실을 더 크게 반영하는 등의 회계처리가 회사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공사 기간이 길고 이 기간 환율이나 물가상승 등 변수가 많은 상황인데 회사가 이익과 손실의 인식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구조라 투자자 등 외부인들은 향후 기업의 이익 수준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경영학부)는 “빅배스처럼 손실을 일시에 인식하면 그 이후 실적 발표에서 실적이 엄청 개선된 것처럼 나오는 ‘어닝 서프라이즈’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이런 어닝 서프라이즈를 발표했다고 해도 이익의 질적 수준을 높게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미리 손실로 처리했다 다시 회수한 금액을 이익에 합산해 어닝 서프라이즈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을 결정하는 것은 이익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인데 이익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나지 않고 크게 변하는 기업들은 PER이 떨어지고 주가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개인 투자자 등 정보를 제한적으로 접하는 투자자들은 건설사 등 수주 산업에 속한 기업들에 투자할 때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도 “건설업 같은 수주 산업은 공사 기간이 수년에 걸쳐 있는 경우가 많아 내재적으로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면서 “투자자들은 이런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뿐 아니라 SK에코플랜트 등 앞으로 상장을 추진하는 건설사들이 있는데 빅배스 형태로 갑자기 조 단위의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투자자들이 건설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jh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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