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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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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박종권 칼럼니스트] 한국의 대통령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당선될 때의 소속 정당이 모두 다르다는 거다. 물론 보수나 진보 계열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당의 명칭은 달랐다.
이승만 자유당, 윤보선 민주당, 박정희 민주공화당, 전두환 민주정의당, 노태우 민주자유당, 김영삼 신한국당,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이명박 한나라당,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정당의 대통령은 8명, 민주당 계열은 4명이다.
과연 당선된 대통령의 소속 정당 명칭이 늘 달랐던 전례가 앞으로도 이어질까. 두고 볼 일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그로부터 60일 이내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특별한 변동이 없는 한 현재의 당명으로 후보를 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어떨까. 혹여 간판과 인테리어를 바꿔 신장개업 효과를 노리지 않을까. 단독 혹은 합당의 형식으로 말이다. 물론 프랑스의 마크롱처럼 제3당에서 다크호스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은 건국 초기 조지 워싱턴이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연방당 1명, 민주공화당 4명, 휘그당에서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한다. 하지만 양대 정당이 자리잡으면서 민주당은 앤드류 잭슨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16명, 공화당은 에이브러햄 링컨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20명의 대통령을 냈다.
이를 보면 미국은 정당정치라고 부를 만하다. 정당은 세월이 흘러도 의구한데 대통령만 바뀌는 거다. 반면 한국은 정당정치라고 부르기 멋쩍다. 대통령 후보 중심의 이합집산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당명과 색깔이 빨강 노랑 파랑 그때그때 바뀌고, 정치인도 철새처럼 새 보금자리를 찾는다.
한국의 대통령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일종의 흑역사인데, 최고 권력자의 끝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는 점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했고, 총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총에 맞아 숨졌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권력도 그런 것일까. 1980년대 이후 이른바 보수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은 모두 구속되는 전철을 밟았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윤석열까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호랑이를 잡으러 보수진영에 들어간 진보진영 정치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진보진영 대통령은 본인 대신 가족이 구속됐다. 김영삼은 차남인 ‘소통령’ 김현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 아들 세칭 ‘홍삼트리오’로 불린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모두가 구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대군’으로 불린 형 노건평씨가 구속됐다. 이들은 대체로 알선수재 혐의였다. 기업이나 공직자가 돈 다발을 싸 들고 찾아온 거다. 아버지나 동생 대통령 그늘에 뻗쳐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거다.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대통령들과 가족들의 공통점이 또 있다. 모두 다음 정권에서 사면복권 받은 거다. 전두환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하지만 그해 12월 대통령 당선자와 교감 끝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난다.
이명박은 2020년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박근혜도 2020년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이 재항고를 거쳐 확정됐다. 그래도 박근혜는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 2021년 사면복권 된다. 이명박은 제외됐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2022년 12월 사면복권 받는다. 벌금도 내지 않고 미루다 82억원을 챙겼다.
덕을 베푼 집안에는 필히 경사로움이 있다고 했다. 조부모나 부모가 두루 선업(善業)을 쌓으면 당대에는 몰라도 자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반대로 악업이 쌓이면 화(禍)가 미친다고 했다.
아마도 중국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사람은 진시황일 것이다. 중국 최초로 통일제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중국의 영어명칭 차이나(China)도 진(秦)나라에서 비롯된 거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뚝 선 콧날, 가로 길게 찢어진 눈, 매와 수리(猛禽) 같은 가슴, 승냥이와 이리(豺狼)의 쉰 목소리를 가졌다." 진시황이 젊을 때 모습이다. 그를 모셨던 울료가 묘사한 것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한다. 헌데 인물평까지 박한 것을 보면 정말로 그럴까 싶다. 혹시 억하심정이라도 있었을까.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고 호랑이와 이리 같은 흉악한 마음을 가슴에 감추고 있다. 자기가 곤궁할 때는 아랫사람일지라도 몸을 굽히나 일단 자기의 뜻을 얻게 되면 쉽게 그 사람을 잡아먹는다. 그가 지금은 나와 같이 평민의 복장을 하고 나를 대할 때는 항상 몸을 낮추고 있지만 장차 천하를 얻게 되면 모두가 자신의 노획물이 된다. 그와는 결코 오랫동안 같이 지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진시황은 하늘 아래 유일무이한 자유인(自由人)이었다. 나머지는 손가락질이나 말 한마디에 목숨이 달아나는 피지배자 노예 신세였다. 진시황은 자부심도 남달랐다. 천하를 통일했는데 왕(王)아라는 칭호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업적에 걸맞은 호칭을 지으라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주도한 이사(李斯)에게 명한다. 이에 최고의 아첨으로 비위를 맞춘다.
"전설의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를 합친 것보다 훌륭하니 황제(皇帝)라고 칭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이다. 그렇게 황제가 된 그는 군주가 죽은 뒤 올리는 시호(諡號)도 폐지했다. 대신 자신을 시황제(始皇帝)로 하고 이세삼세만만세(二世三世萬萬世)로 이어가도록 했다. 결과는 만만세가 아니라 고작 삼세(三世)에서 끝이 났다.
자신이 정복한 천하를 순행하며 불로장생을 꿈꾼 진시황은 50세도 되기 전 49세에 죽는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서. 권력을 누리면서 오래 살겠다는 미몽과 망상을 끝내 버리지 못한 채 말이다. 벌판과 성곽에 흥건한 피의 업보였을 지도 모른다.
진시황은 몰랐다. 산동과 산서를 가르는 중국의 태항산은 우뚝 솟은 봉우리도 많지만 깊은 골짜기도 무수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역사는 기록이다. 물론 기록의 해석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진시황이 전쟁과 만리장성 축성으로 수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인간적 포악한 황제에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영웅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한때 중국 공산당은 진시황을 노동자와 농민의 적(敵)으로 여겼다. 중국 최초 농민반란인 ‘진승오광(陳勝吳廣)의 난’을 추켜세운 거다. 전제 왕권에 맞서 노동자와 농민이 정의롭게 떨쳐 일어난 것으로 말이다.
이때 반란지도자 진승이 유명한 말을 남긴다. "왕후장상이 어디 씨가 따로 있느냐." 실제로 초한지의 주인공 항우(項羽)는 회계지역을 순행하던 진시황을 보고 "내가 저자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8척 장신에 산도 뽑아버릴 힘을 갖추고 눈도 부리부리한 귀공자의 눈에 진시황은 볼품이 없어 보였을지 모른다.
울료의 묘사가 진실이라면 말이다.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머우는 ‘영웅’에서 천하를 통일하려는 진시황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려는 영웅임을 암시한다. 그런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포기하는 자객들도 궁극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으로 그린다.
하지만 진실은 권력의 속성이란 맹목적이면서도 한계가 없는 욕망이 아니겠나. 우리의 지도자도 평가가 엇갈린다. 사사오입 개헌으로 종신 대통령을 꿈꾼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에서 축출된 독재자로, 유신헌법으로 종신 대통령을 기도한 박정희는 혁명의 기린아에서 부하의 총에 피격된 군사쿠데타 원조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 아마도 그는 민주주의 삼각산(三角山)의 한 봉우리가 아니라 행정과 입법 사법을 아우른 한국 제일봉(第一峯)을 꿈꾼 듯하다. 권력의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다는 것을 알았을까.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볼 수 있을까. 이런 그는 어떤 인물로 기록될까.
피로 쓴 이정표일까, 파도 앞 모래사장의 낙서일까. 여하튼 일부에서 그를 거대한 기득권에 자신을 부딪쳐가는, 풍차를 향해 내닫는 라만차의 돈키호테에 비유하는 것은 세르반테스를 오독(誤讀)한 거다. 몰락해 죽어가는 돈키호테의 옆에는 세상을 구하러 떠나자고 울부짖는 산초가 있지만, 내란의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 받을 그의 곁에는 누가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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