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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말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발전 노동자들이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올해 말부터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2036년까지 총 6기의 발전소가 폐쇄될 계획이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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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석탄발전소로 먹고살던 지역, 발전소가 폐쇄되면 어떻게 되나요?
A. 전세계적인 탄소감축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36년까지 28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됩니다. 발전소 폐쇄가 먼 미래의 일 같지만, 당장 3년 내 약 330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직무 전환이 불가능한 정규직과 단기계약직까지 합치면 실직자 수는 배 이상 늘 수 있습니다. 발전소 폐쇄가 임박해오면서 노동자뿐 아니라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사회 전체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석탄발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지역을 빠져나갈 경우 당장 ‘지역 소멸’이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점을 가장 먼저 발전소 폐쇄가 시작되는 충남 태안군으로 좁혀보겠습니다. 태안군이 현재 운영 중인 석탄발전소 총 10기 중 6기가 올해부터 2036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됩니다. 발전소 1기당 어림잡아도 최소 500명, 총 3천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게 됩니다. 4인 가족으로 보면 1만2천명이 떠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정부는 폐쇄하는 석탄발전소 용량만큼 액화천연가스(LNG·엘엔지) 발전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가스발전이 석탄발전보다 탄소 배출량이 40% 이상 적어 ‘무탄소 전원’(재생에너지·원전 등)으로 대체하기 전까지 중간 다리로 활용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는 바로 그 지역에 가스발전소를 짓는 게 아닙니다. 올해 폐쇄될 태안화력 1호기는 경북 구미의 가스발전으로 대체되고, 태안화력 2~4호기도 충남 공주, 부여의 가스발전소로 대체됩니다. 특성상 가스배관이 잘 갖춰진 도시나 에너지 사용이 많은 공단 인근에 설치하는 게 비용 효율이 크다는 이유입니다. 발전업계는 “석탄 수입에 유리한 해안가에 자리 잡은 석탄발전소 부지에 가스발전소를 지으려면 배관을 새로 깔아야 해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결국 석탄발전 노동자들이 가스발전으로 직무 전환이 이뤄져도 어차피 태안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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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1일 태안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상가에 ‘임대 매매’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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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은 발전소 폐쇄가 인구 5만명 벽을 허무는 기폭제가 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지난해 말 기준 태안 인구는 6만300명입니다. 발전소 폐쇄 변수가 없어도 태안군은 대표적인 인구소멸 위험지역입니다. 2036년까지 발전소를 대체할 신규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면 1만명 안팎의 급격한 인구 순감소가 불가피합니다.
더 큰 문제는, 태안은 65살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34%(2만1천명)를 넘어선 초고령화 지역이라는 겁니다. 바로 옆 도시인 서산과 당진 등의 노인 인구가 이제 막 20%를 넘어선 것과 비교됩니다. 태안 전체 유치원 수만 봐도 2003년 27개에서 2022년 19개로 점점 줄고 있습니다. 발전소 폐쇄로 젊은층이 더 유출될 경우 청년과 아이들이 떠나고 노인만 남은 도시가 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한국 사회는 앞서 설계수명을 다해 석탄발전소를 폐쇄한 보령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보령은 2020년 보령화력 1·2호기를 폐쇄하면서 인구 10만명 선이 무너졌습니다. 발전소 폐쇄로 감소한 직접고용 수는 400명에 불과했지만, 관련 일자리 감소와 가족 유출로 매년 1500명이 보령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연간 세수 41억원과 소비지출 190억원이 줄어 지역 경제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2026년 보령화력 5·6호기가 추가 폐쇄될 땐 그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발전소 폐쇄를 앞둔 태안을 비롯해 하동군, 고성군(경남), 옹진군(인천) 등도 보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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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말 충남 태안 시내에서 발전소 2차 하청 노동자인 김영훈(가운데)씨가 ‘석탄발전소의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하는 조형물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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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폐쇄를 앞둔 지역 상인들의 걱정과 불만도 커지고 있습니다. 태안 중앙로에서 문구용품점을 운영하는 이강웅씨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손님이 없어 가게들은 문 여는 시간을 줄이고 있고 음식점도 매출이 줄어 직원을 쓰기 힘들 정도인데, 발전소까지 폐쇄되면 가게 대부분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발전소를 빼면 일자리가 없는데 누가 태안에 와서 살겠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점포가 있는 중앙로 인근 상가들은 한 집 간격으로 ‘임대’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인근 번화가인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24시간 편의점’들도 손님이 없어 밤 10시 이후 문을 닫으면서 인건비를 줄이고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우려를 표했지만 정치권이 손 놓고 있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폐쇄될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직무 전환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지역 산업 인프라와 인재 교육 전반에 투자를 강화하는 게 지역소멸을 막는 길이라고 강조합니다.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장은 한겨레에 “280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우리나라 저출산 대책이 완전히 실패한 건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양육비 증가 등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채 출산장려책에만 집중한 결과”라며 “석탄발전 노동자의 재취업·창업 지원 같은 일차원적 정책에만 메달릴 게 아니라,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교통, 산업 인프라 전반에 투자하고 그에 맞는 노동자 양성을 위한 교육을 강화하는 게 숙련 노동자 유출과 지역 소멸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태안/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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