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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가수 한명숙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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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가수 한명숙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22일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 가요계에 따르면 한명숙은 이날 지병으로 눈을 감았다.
1935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6.25 전쟁 이후 남한으로 내려왔다. 가난한 형편 탓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수로 데뷔했으며, 태양악극단을 거쳐 미8군쇼에서 주로 활동했다.
팝에 어울리는 허스키한 음색으로 큰 호응을 얻은 그는 1961년 가수 최희준의 소개로 작곡가 손석우를 만나면서 분기점을 맞았다. 고인은 같은 해 손석우가 쓴 힐빌리(초기 컨트리음악 스타일) 리듬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흥행했다. 특히 프랑스 가수 이벳 지로가 1963년 내한 당시 이 곡을 한국어로 부르면서 고인에게는 '한류 1호 가수'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고인은 이후 손석우와 함께 '우리 마을', '눈이 내리는데', '검은 스타킹', '시름의 꼬리별이', '센티멘탈 기타', '선유가', '상한 갈대를 꺾지 마라' 등 노래를 발표했고, 모두 히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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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앨범 재킷. /사진=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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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트럼펫 연주가 이인성과 1956년 결혼,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남편이 4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고인 혼자 세 자녀를 모두 키웠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다.
고인은 남편과 이른 사별로 가세가 기울면서 생전 생활고에 시달렸다. 2007년엔 사글세 단칸방에서 홀로 사는 소식이 전해져 최백호 등 선후배 가수들이 고인을 돕기도 했다.
고인은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1978년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고, 2000년 국민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03년 KBS 가요대상 공로상을 받았다. 2010년엔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가 '한명숙 헌정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박성서 평론가는 "(허스키한 음색의) 한명숙은 이른바 미성가수의 시대에서 '개성시대'로의 전환점을 마련한 가수"라며 "미8군 무대 가수들이 대거 일반 무대로 진입하는 자극제가 됐고,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가요의 주류로 부상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전형주 기자 jh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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